6.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박의흠 전도사 가정
2019/03/21 15: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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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헌신의 가정의 후예들
순교자 박의흠의 신앙, 사위 김준채 목사를 거쳐 4대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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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후예들
한국교회는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수난을 당하였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수난중의 하나는 일본강점기의 신사참배 강요였다. 이 수난으로 인해 많은 ‘수진성도’들이 순교하거나 옥중에서 고난을 당했다. 그 후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순교신앙의 열정을 이어 하나님께 헌신하는 한 가정을 찾아본다.

순교자 박의흠
박의흠 전도사는 1901년 11월 13에 평북 의주군 고관면 용화동에서 대지주 부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서 1942년 42세에 순교하였다. 믿기 전에는 난봉꾼이었지만 30세 되던 1930년 박의흠은 그의 형님이 아내의 병을 고쳐보려고 토교교회 김성심 권사를 모셔다가 집안의 우상을 청산하고 온 가족이 예수부터 믿게 되었을 때 앓던 형수가 차츰 낫게 되는 것을 보고 온 식구들과 함께 믿게 되었다.
박의흠은 부모님과 의논 없이 재산을 정리하고 선천으로 나가 성경학교 공부를 시작했으며, 성경학교 삼년을 일등으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선천 미동병원 원장 최익손 선교사의 권면을 받아 정주 천태동이라는 해변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상단교회에 시무하면서 박의흠 전도사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2학년 때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났고, 상단교회 다섯 장로 중에서 두 명이 형사들의 위협에 넘어가고 말았고, 교인들은 통분해서 박의흠 전도사에게 신학교를 그만 두고라도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박 전도사는 “상단교회 당회가 이미 다 가결해버렸는데 내가 이제 가면 무엇 하겠느냐?” 면서 당회에 엽서로 간단하게 편지를 한 장만 보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데 아론은 밑에서 ○○○하였느니라”라고 한 다음, 상단교회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을 아시오 라고 보내고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신사참배로 넘어간 신학교를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 전도사는 한동안 성경 연구에 몰두하다가 양무리를 살리는 길은, 범죄한 교회에서 한 사람씩 끌어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선 상단교회 교우부터 방문하였다.
신사참배를 한 목사나 교역자들은 박의흠 전도사 때문에 교회를 운영할 수가 없고 교역자 노릇도 못해먹겠다고 당국에다 박의흠을 잡으라는 투서를 넣게 되었고, 신의주경찰서 형사대가 총 출동하여 박 전도사와 김린희 전도사를 잡으려고 온통 혈안이 되었다.
박의흠 전도사는 가족을 이끌고 다시 안동으로 나갔으며, 신앙을 지키는 가정들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위로와 격려해주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박 전도사와 김린희 전도사가 함께 있을 때 형사들이 급습했다. 홀로 다락방에 피신했던 박 전도사는 다락에 앉아서 김 전도사가 형사들에게 그렇게 두들겨 맞고 발길에 채이고 고통을 당하다가 잡혀가는 것을 숨어서 듣고 괴로워했지만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뜻을 구하면서 그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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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반대로 순교의 제물이 되다
그후 북만주로 피신해 깊은 산골 동네로 이사를 했다. 거기는 낮 정오가 되어야 해를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산중이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안동결찰서 고등계에 있는 홍 형사라는 사람과 만주국 순경에게 체포당했다.
박 전도사는 경찰당국이 신사참배 반대운동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라 하여 고등계 주임이 직접 취조를 하였는데,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묻는 대로 하나하나 대답을 하는 동안에 차까지 한잔씩 서로 나누어 마셔가며 조서를 꾸몄다고 한다.
재판에서 징역 13년형의 언도를 받고 봉천형무소에 수감되어 여름을 지나고 그 해 첫 겨울이 되어서 가족이 면회를 갔을 때의 모습은 처참했다. 박 전도사와 김윤섭 전도사가 함께 면회실로 나왔는데, 그 추운 겨울에 죄수복 한 벌씩만 달랑 입고, 시멘트바닥을 양말도 없이 맨발로 발가락을 꼬부리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박 전도사는 체격이 보통 체격이었으니 옷이 그런대로 몸에 맞기나 했지만, 김윤섭 전도사는 체격이 장대하였기 때문에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훤하게 다 드러나고 손발이 새까맣게 죽어 있어서 더욱 참혹하게 보였다.
몸이 점점 허약해진 김윤섭 전도사는 수감된 후 해를 넘긴 어느 봄날 결국 감옥에서 순교했으며, 김윤섭 전도사가 순교하고 난 후 6월, 박 전도사는 장티푸스에 걸려 병감에 수용되어 있었고, 면회를 간 딸이 병감으로 찾아갔을 때 이미 박 전도사는 기력이 쇠해 죽음 직전에 있었다.
박의흠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하겠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풀려날 수 있는 감옥에서 목숨을 바쳐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순교의 제물이 된 그는 중국 봉천(심양) 북능 묘지에 매장되었다.

순교자의 후손들
박의흠 전도사에게는 장녀 박신자(박금주)와 신원, 신길, 신광이란 아들들이 있었다. 박신자의 남편 김준채 목사는 그의 본 집안은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순교자의 가정을 돌아본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박신자(금주)와 결혼하여 박의흠 전도사의 사역을 이어갔다.
김준채 목사는 평안북도 룡천군 부라면 출생으로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6.25 전에 월남하여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재건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했다. 충남 공주교회, 교령 귀원교회, 부산 청학동교회, 대구 삼덕교회, 경북 내량교회 등의 교회를 시무한 후 1991년 10월,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준채 목사의 6남매 중, 장남 김종만 장로는 해군 U.D.T교관, 외항선 선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새부름교회의 시무장로로 사역하고 있으며, 백화자 집사와의 사이에서 김성훈, 김재훈 , 김경은 3자녀를 두었다.
또 차남 김종길 목사는 재건총회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원, 칼빈신학교, 코헨대학교(D.C.E.D)에서 공부했으며, 칠레선교사로 파송되어 칠레한인연합교회에서 17년을 시무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재건서면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재건교회의 부총회장으로도 사역하고 있다.
김준채 목사의 장녀 김종순은 정정민 목사와 결혼하여 사역하고 있다. 정 목사는  재건총회 증경총회장이며, 현재 재건부평교회 담임목사이고, 재건총회 신학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2녀 김종회 집사는 박성용 장로와 결혼하여 부산 해운대교회를 섬기고 있다. 박성용 장로는 공무원으로서 해운대 중2동 동장과 해운대구청 감사과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재건해운대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고 있다.
3남 김종건 장로는 송수경 집사와 결혼하여 재건은석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며, 대구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하고, 현재 남해 소망의집 총무로 재직하고 있다. 김재원, 김지훈 1남1녀가 있다.

4대로 이어지는 헌신
제4대 목회자들이 믿음의 조상들을 따르고 있다. 김종기 목사에게는 3아들이 있고, 그 중에 장남 김신훈 장로(조아라 집사)는 재건광주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고 있으며, G.M광주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자녀로는 김조회, 김주호 남매가 있다. 차남 김명훈 집사는 찬양사역자인 이현숙 집사와 결혼하여 중남미 무역업을 하는 직장인으로 재직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3남 김병훈 목사(김수지 사모)는 현재 ‘더 사랑교회’ 교육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슬하에 김소원, 김소윤, 김주영의 3자녀가 있다.
그리고 김준채 목사의 장녀 김종순 사모(정정민 목사)에게는 정영은 목사(최윤진 사모)와 정다은 사모(백재승 강도사)가 있는데 정영은 목사는 한국성서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백재승 강도사는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륜교회 강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또 차녀 김종회 집사(박성웅 장로)의 장남 박효빈 전도사는 성서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과천중앙교회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차남 박경찬은 성서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순교자의 가정에 믿음의 아름다운 사역을 계승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요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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