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13
2019/03/22 14: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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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민 1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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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명대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만든 하나님의 성막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다. 시내 산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함께 거하는 놀라운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의 노예였던 자들이 해방되어 하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늘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아들이 되고, 백성이 되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축복받은 자들인가! 이제 당장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은 것 같은 은혜와 특권을 받은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자유와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땅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내 땅에서, 내손으로 농사짓고, 내 밥을 내가 먹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그 첫 발걸음을  때였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지 제 이년 이 월, 이십 일에, 성막에 구름이 떠올랐으므로 가나안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한다. 그들은 마치 전쟁을 앞둔 군대처럼 각 지파별로 사람 수를 점호하고, 편대를 짰다. 말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출발 나팔이 울렸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지 2년이 흘렀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던 만나가 이제 싫증이 났고, 광야의 천막생활도 이제는 지쳤다. 그래서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행복했던 때로 기억하며, 값없이 먹던 생선과 각종과 과일과 양념식이 그리워했다. 이제는 그들의 쇠약해진 기력을 돋울 수 있는 고기와 보양식과 각종 양념식을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모세도 목자  생활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난 자식도 아닌데 이들을 품고 기르며,  이제는 고기까지 내놓으라고 울고 앉아 있는 이들을  자기는 더 이상 이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 불평하며,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하나님의 이들에 대한 응답은 먼저 모세에게 동역자를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장로들 칠십명을 택하여 회막에 따로 세우고, 여호와께서 자신이 직접 내려가서 모세와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있는 영을 구별하여 그들 위에 두어 그들이 모세와 함께 짐을 지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를 원 없이 주어 고기 냄새가 코에 넘쳐서 싫어할 때까지 한 달을 먹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기가 힘들었다. 보행자만 60만 명이 되는 데 이들에게 소나 염소를 몇 마리를 잡은들 이들의 양이 차며,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바다에서 잡아 모은들 이것으로 배부르게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하루 이틀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60만명을 두달이나 그것도 배불리 먹고 고기에 질려서 더 싫어할 때까지 먹인다는 것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한계를 정해놓고 어디까지는 가능하나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이제 내 말이 네게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네가 보게 될 것이다.”(23)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손”이나 “여호와의 팔”은 다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라는 말은 수사적인 표현으로 “짧지 않다”는 반의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의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 그가 아는 (야다, ), 곧 친분이 있는 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불러 회막으로 불렀다. 이때 여호와께서 임하셔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구별하여 장로들에게도 주셨다. 모세에게 있는 영을 구별하여 장로들에게 주셨다는 말씀은 언뜻 이해가지 않는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찰”() 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남기다”(reserve), 혹은 사역형으로 “따로 떼어놓다”(set apart) 등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대개의 영역본들은 “그 위에 있는 영을 조금 취하여”(take some of the Spirit that was on him, KJV, ESV, NET) 라고 번역하고 있고, NIV는 “그 위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 조금 취하여”(He took some of the power of the Spirit that was on him)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까 여호와께서는 모세 위에 있는 성령을 조금 가져다가 장로들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자 영들이 그 위에 머물었다고 했다. 성령은 마치 성냥불을 하나 켜서 생일 케익 위에 세워놓은 여러 촛대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이리저리 옮겨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물질이 아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금씩 떼어서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모세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성령을 70인 장로들에게도 주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이야기하심으로 백성들에게 그와 모세와 특별한 관계성을 과시하시며 모세를 그의 종으로 인치셨던 그와 똑같은 성령을 이들애게도 주심으로 이들이 모세와 똑 같은 영적 권위와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자 모세의 동역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고 계신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그들 위에 머물 때에 이들은 다같이 예언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이들이 어떻게 예언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이들이 예언하는 것을 인지했고, 자신들도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게 예언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명단에 오른 70명 가운데 엘닷과 메닷 두 사람은 회막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예언을 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알고, 이들이 예언하는 것을 금하라고 충언을 하지만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셔서 모두 선지자 되게 하셨으면 좋겠다.”(29)고 말한다. 이 사실을 바꾸어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동역자로 선지자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고기를 먹이는 조력자를 주셨다기 보다는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을 순종하도록 훈련시키는 선지자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이나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노예근성이 뼛속 깊이 박힌 자들이다. 종살이에서 해방 되어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신분이 변화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상황도 아닌데 만나는 못 먹겠고, 고기를 달라고 울고 원망하며(6), 이집트에서 각가지 보양식과 양념식을 먹고 뛰놀며 죄의 낙을 즐길 때(히 11:23-24)가 행복했다(18)고 말하는 이들을 볼 때, 이들은 자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땅에서 자유인으로서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농사지어 자기 밥을 먹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들에게는 노예근성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인생철학을 확립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선지자가 필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또한 주목되는 점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을 통하여 세상 만민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가르쳐 세상을 구원할 선지자로 쓰시고자 하신 것이다(창 18:18-19). 그리하여 앞으로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선지자를 동역자로 주시는 것이다.
둘째는 고기를 먹고 싶어 원망하고 울고 앉아 있는 백성들에게 메추라기를 고기로 주셨다. 바람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휘몰아와 이스라엘의 진영에 떨어트렸다. 지면 사방으로 하룻길 넓이, 그리고 두 규빗 높이로 쌓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메추라기를 잡아 온 사방에 널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치셨다. 33절에 “고기가 아직 그들의 잇새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 백성을 매우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이었다.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치 굶어죽을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현재 내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왜 저 사람에게는 주시고, 나에게는 안 주십니까? 저 사람에게는 이것을 주시고 나에게는 저것을 왜 안 주십니까?  하고 대들면 우선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 하나님의 진노만 자아내게 하는 짓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는 것은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첫째도 감사, 둘쩨도 감사, 셋째도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지 못하면 망하는 길 밖에 없다. 아무리 감사할 수 없을지라도 감사해야 한다.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주신 만나 대신 고기를 달라고 울부짖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망하게 된 이곳을 “기브롯 하타와”라고 명명했다. 앞에서는 “다베라” (여호와 불이 그들을 태웠다)라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기브롯 핫타와라고 불렀다. 히브리어 “기브롯 핫타와” ()라는 말은 장사지내다는 의미의  “카발”()과 “욕망하다, 바라다”는 의미의 “타아바”()에서 만든 합성어로 “사람들이 (이집트의 고기)를 그리워 하던 사람들의 묘지”(the place that people craved the meat, the longing for the meat of Egypt)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다. 이제 거룩한 양식을 먹고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집트를 그리워하고, 이집트에서 값없이 먹고 마셨던 이집트의 음식이 그리워 울고 원망하고 있다. 이들의 종말은 멸망이었다. 기브롯 핫다와는 바로 이같이 배은망덕하게 과거의 죄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타락한 인간들의 종말을 기억하게 하는 공동묘지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탐욕에 사로잡혀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망한 자들의 무덤이라는 의미이다. 기브롯 핫타와는 “탐욕의 무덤” “욕망의 매장지”라는 뜻이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 탐욕의 무덤을 파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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