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지구본

     이 철 건

찡그리고 있는 지구본 하나 책상 위에 있다

일회용 컵이 미안했을까
휴지통에 구겨진 채 머리를 처박고 있다

가만히 지구본에 손을 대면

표면에 달라붙은 미물 같은 생

지구본이 두르고 있는 지도는
그을리고 흠집이 나 있다

가만히 지구본에 귀를 대면
약한 것들의 가여운 울음소리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게 될
그날은 정말 언제인가

녹슨 페인트 같은 구각이 벗겨지고
지구가 새 지도를 입을 날이

손가락으로 지구본을 돌리면
의로운 울음에서 새 시대의 광선을 잣으며
우주만 한 바퀴를 돌리는 이가 보인다

봄이 오고 있다는데, 아직 봄이 멀다. 책상 위의 지구본에서 어딘가 숨어 있을 막막한 계절의 거리를 재어 본다. 찡그리고 있는 지구의 신음소리를 듣고서야 알아채었으니, 지구본 앞에서 장엄하고 신비로운 땅 끝까지 의 여행을 꿈 꾼 적도 있겠지만, 지구촌 곳곳이 음울하다. 아프리카 적도 위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에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어 물과 생명의 근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희끗 희끗 잔설이 엎드려 있다니 안타깝다.
가만히 지구의 숨소리를 듣는다. 광활한 궁창에는 뽀얀 매연이 가득해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가축과 들짐승과 새와 모든 생명체의 약한 신음소리와 울음도 들리는 듯 둥근 지구본을 가만 가만 돌다 보면 죽어가는 불쌍한 생명들의 체온을 느낀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아야 될 것은 우주의 주인이신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의 섭리가 거무죽죽한 舊殼을 벗기시고 새롭게 회복되어 唱和하는 노래 들려오리라고...
시인은 ‘우주만 한 바퀴 돌리는 이가 보인다’라는 시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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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지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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