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찾아서 7. 고신측의 3대 목사, 2대 총회장 박유생 목사 가정
2019/04/05 11: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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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만 바라보는 신앙 계승
1대 박유생 목사·2대 박정원 목사·3대 박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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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목사란 귀한 일이고 축복의 사역이다. 그것도 부자가 총회장을 하는 기록을 낸 가정이 있다. 1대 박유생 목사(97세, 김해중앙교회 원로), 2대 박정원 목사(76세, 대연중앙교회 원로), 3대 박성진 목사(49세, 김해복음교회 목사)가 그들이다.
이들이 소속된 교단은 예장고신측으로 순교신앙의 전통을 이어온 개혁주의 교단이다. 그러니 3대 목사는 고신대학교(옛 고려신학교)의 동문인 셈이다. 그래서 2016년 ‘고신대 가족상’을 수상하였다.
뼈속부터 ‘고신 정신’으로 가득찬 이들은 1대 박유생 목사가 고신 총회 제42회 총회장을, 제2대 박정원 목사가 62회 총회장으로 섬기는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겼다. 이 가정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세상 영화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이 가정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박유생 목사의 모친에 의해서다. 모친은 임신 2개월째 남편과 사별하고 어려운 여건에 있었다. 어느 날 밤 밤길을 걷는데 예배당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더란다. 아들을 낳은 후 아기를 품에 안고 스스로 교회에 나갔다.
1대 박유생 목사의 육성을 들어보자.
“저는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일본으로 유학을 갈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창피해 그대로 부산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해 검찰 서기가 됐습니다. 그 이후 축산업 등 사업을 해 많은 돈을 벌었는데, 중병에 걸려 6개월 동안 쉬게 됐습니다. 그때 성경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는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모든 재산을 정리해 연지교회를 개척하고, 그때부터 목회자의 걸을 걷게 됐습니다.”
말로는 이렇게 표현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내려놓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박유생 목사는 한 평생 ‘기도하는 목사’의 삶을 살았다.

 아들의 방황 그리고 회심
목사는 자기가 받은 은혜와 사명으로 이 사역을 감당하지만 자녀들에게는 생각지도 않은 고통이 되어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이 박유생 목사의 가정에 찾아왔다. 2대 아들 박정원 목사의 육성을 들어보자.
“아버지가가 전 재산을 다 정리해 연지교회를 개척한 때가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는 정말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 고기반찬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는 시대였지만 저는 늘 고기반찬을 도시락을 싸서 학고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 재산을 다 정리하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자 그때부터 고기반찬은 고사하고 도시락도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또한 수업료를 내지 못해 창피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생활환경과 전도사 아들로서 교회 성도들의 뭇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어린 저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앞에서만 교회 다니는 것처럼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하던 날, 부모님께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신앙은 자유인데 이제부터 교회에 다니지 않겠습니다!’라고 반기를 들고 본격적으로 탕아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에게 반항하기 위해 더 심하게 방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의 방황에 부모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목사의 아들의 방황은 부모로 하여금 기도의 강물을 흐르게 한다.
“부모님은 제가 ‘결혼을 하면 방황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결혼을 시켰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 자란 아내는 ‘목사 아들이면 사람은 확실하겠다’ 싶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힘들어 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후, 제가 결핵 3기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비교적 치료가 쉬운 병이지만 40여 년 전의 결핵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치명적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약물치료와 주사를 권한 의사 역시 완치에 대해 반신반의할 정도였습니다.
약을 20일 정도 복용한 어느 날 아침 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약을 치워 버린 것입니다. ‘약을 먹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같아 치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새벽기도에 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단 번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새색시가 새벽길을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자신을 예배당까지 데려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의 보디가드로 새벽기도를 따라 다녔습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밖에 있을 수 없어서 예배당 맨 뒤에 앉아 있기를 사흘 쯤 되는 날, 그동안 전혀 들리지 않던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러면 제 삶을 바꾸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데, 정말 한 달 내내 회개의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 병이 완치가 된 것입니다. 의사도 놀라면서 “당신의 병은 하나님이 고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병원 문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고 해도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제가 목회자가 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제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되지 않으면, 또 방황할까 겁이 나서입니다. 회개 한 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아버지는 제 방황이 당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수시로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제가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만 8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당에서 주무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 저렇게 살면 지옥에 갈 것이 뻔한데, 제가 어떻게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까지 저는 집에서 자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하셨답니다. 어머니가 엎드려 기도했던 마룻바닥을 보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 지 그 자리에만 곰팡이가 슬어 있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과 아내의 기도로 제가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 박유생 목사는 아들이 전화로 신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잘 믿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들 집으로 찾아 갔다. 그런데 자부로부터 그동안 과정을 설명 듣고, 그 말이 진실인 줄 알게 됐다. 9년 만에 아들을 부둥켜 않고 같이 울었다.

3대로 이어지는 목사
박정원 목사의 아들 성진이 목사가 되었다. 목사 장립식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하였다. 이렇게 하여 3대 목사의 명문가가 태어났다. 3대 목사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은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목회핵심은 ‘오직 주만 바라보는 목회’입니다. 할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 가 보면 ‘오직 주만 바라보는 교회’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셨던 대연중앙교회당에도 ‘오직 주만 바라보는 교회’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제가 두 분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부분도 바로 ‘주만 바라보는 목회’입니다. 저 역시 두 분에게 배운 대로 그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할아버지는 일평생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기도의 자리에 않습니다. 아버지 역시 기도하는 목회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예전에 목회하실 때, 금요기도회를 마친 후 교인들과 함께 산 기도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분의 목회를 보면서 배운 것이 ‘기도하는 목회’입니다. 심방을 잘하는 것도, 설교를 잘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즉 영성을 가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목회자가 아닌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신앙은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져 간다. 굽이굽이 돌아 저 영원한 바다에 이를 때까지 ‘복있어라 믿음의 명문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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