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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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에 있어서 정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즉 지도자의 정치적 편향성에 의해서 복음의 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를 초대교회 이후 로마에 복음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한 콘스탄틴 대제의 집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외의 선교지에서 선교사님들은 현지 정치 지도자들과 많은 교분을 갖게 된다. 이는 현대 선교이후에 서구의 선교사들이 제 3 지역에서 선교를 하는 동안에 정치적 지도력을 현지인들에게 가르치는 경향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왔던 헐버트도 궁궐 속에서 국가의 기울어진 운명을 부여잡고 노심초사하던 고종에게 정치적인 힘을 드렸음을 다양한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구한말 나라가 흔들리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몸을 던졌다. 헐버트는 먼저 필봉으로 일제와 맞섰으며, 이어서 밀사외교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의 박해로 미국에 돌아가서도 그는 집회, 강연, 언론을 통하여 줄기차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김동성은 1948년에 쓴 “미국인 상기”에 다음과 같이 헐버트에 대한 글을 남겼다.    
“만약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애국자가 있다면 호머 헐버트보다 나은 이는 다시없다. 한국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쫓겨난 그는 많은 기회를 만들어 한국을 대변하고 소개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미약하지만 열정과 성의를 다해 청중을 감동시켰다. 강연 때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한국과 한국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일생을 두고 그는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김동성은 헐버트가 흘린 한국 사랑의 눈물에 넋이 나갈 정도로 감격하였다.
고종의 불침번을 섰던 헐버트는 헤이그 밀사로도 파송된다. 일본은 급기야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대한제국의 모든 외교권을 일본이 감리, 지휘하고 서울에 일본통감이 주재한다는 보호조약을 총칼의 위협 아래 억지로 맺었다. 이렇게 위협으로 맺은 불법 조약이 바로 ‘을사늑약’이다. 러일전쟁이 끝났으나 일본이 오히려 나라까지 집어삼키려 하자 고종황제와 충신들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 하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을사늑약의 날짜가 1905년 11월 18일로 나오는 역사 기록도 있다. 이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본이 회유와 강압으로 소집한 의정부 회의가 1905년 11월 17일 자정을 넘겨 끝났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일제는 총칼로 위협하여 대신들에게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등은 끝까지 반대하였고 소위 을사오적인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은 찬성하였다.
특히 1905년 8월 일본의 한국지배를 영국이 양해한다는 제 2차 영·일 동맹이 체결되자 황제와 측근들은 주권 상실의 위기를 감지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그러한 와중에 헐버트와 민영환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담겨 있는 선위조처(善爲措處) 구절을 떠올렸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문구를 자세히 검토한 두 사람은 미국 대통령에게 황제의 친서를 보내 일제의 한국 침략 야욕을 저지시켜 달라고 호소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어서 민영환이 고종황제에게 친서전달과 특사 파견을 건의하였다. 고종황제는 이 건의를 즉시 수락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이 조약을 무시하고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으며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친선 의무 조항을 무시하였다. 태프트-가스라 밀약은 국제적으로 The Taft-Katsura Agreement로 기록되고 있어 이 책에서는 태프트-가쓰라 밀약 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조약 때문에 미국은 헐버트가 가지고 간 고종황제의 친서마저도 전달받기를 거절당했다.
요즈음 한국의 매체는 3.1 운동의 주는 교훈과 역사적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렇게 떠드는 수많은 목소리들 가운데 선교사들의 업적은 점전 소멸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더 선교사님들이 노력하셨던 조선 사랑의 사건들을 더 높이 드러내어야 할 시간이다. 이와 같은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선교사님들이 사역하셨던 모든 일들을 역사적인 조명과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종 매체를 통해서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영상화 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제 조선의 선교역사에 담겨진 진실한 것들을 추분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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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치와 헐버트 선교사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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