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대 김영옥 목사·2대 은석 목사·3대 형칠, 형일, 형태, 형달, 형숙 목사·4대 형규, 대규 목사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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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모범적 ‘4대 목사가정’으로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사역한 김영옥 목사의 가정이 있다.
1대 김영옥 목사, 2대 김은석 목사, 3대 김형칠 김형일 김형태 김형달 김형숙(형훈) 목사, 4대 김형규 김대규 목사로 이어지는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한국교회 최초의 조사 김영옥
한국교회 최초의 조사(助事)로 불리는 김영옥은 191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9월에 대구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 마지막 회의에서 목사로 장립되었다. 지난 2011년이 그의 목사장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시무처는 경북 안동교회이며, 그의 나이 40세(1871년생)였다.
그때 경상남북도에서는 단 2명의 목사가 있었다.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4회 졸업 동기생인 홍승한(방지일 목사의 외숙)은 경북 대구 시내에 제일교회 목사로 장립되었는데, 그는 5년 후에 총회선교사로 중국 산동성에 파송되어 김영옥이 경상남북도에 유일한 목사로 남았다.
김영옥은 황해도가 고향이고, 홍승한은 평안도가 고향으로 모두 이북 출신들이었다. 장로회신학교가 평양에 설립됨으로 평안도가 장로교회의 본산지처럼 알려졌다.
김영옥은 1894년경 20대 초, 항해도 배천군 해월면 부소동에서 빈한한 소작인의 신분으로 살았는데, 평산 신씨댁으로 출가한 둘째 누님을 찾아갔다가, 거기에서 네 살 아래인 배제중학생 리승만을 만나 장연 소래에 미 선교사가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 목사에게서 기독교를 전도 받고 유교에서 개종하여 예수교인이 된 후, 당시 성서공회의 매서인(賣書人)의 직분을 거쳐 1898년경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모삼열 목사의 조사(助事)가 되었다.
모삼열(Samuel Noore) 선교사와 함께 경성으로 와 종로 4, 5가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한 결과 예수를 믿게 된 신도들이 1년 후 모여 지금의 서울 종로5가 연지동에  연못골교회를 이루었는데,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1967년 12월에 그의 손자 김형태가 연못골교회(지금의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라 하겠다.
김영옥은 성실한 복음사역자로 겨울 사경회에 참석하여 지방의 두 사경회를 주관하던 모삼열 선교사를 지원했다. 또 7월에는 경성에서도 사경회에 한 주간을 보내며 모삼열 선교사가 유숙하고 있는 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거리전도 집회를 했다.
그의 고향인 예성강이 해월면 동쪽에 흘러 하구에 해월면 벽란도가 있어 배편으로 경성 마포나루까지 교통이 가능했다. 김영옥이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들은 배천, 평산, 토산, 금천, 금북, 금성, 적성 교회 등이다.
1901년 말부터는 김영옥이 모삼열 선교사의 후임인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오월번(Henry G. Welbon) 목사의 조사가 되어 경기도 양주, 포천, 연천 등지와 강원도 철원 지방과 양구, 화천 등지에 전도하여 교회를 개척했는데, 1905년 6월에 연천에서 장남 은석(恩錫)이 출생했으며, 1907년 9월에 선교사 공의회(公議會)에 의해 김영옥이 연천 사장교회 장로가 되었다. 이때 서상륜도 서울 승동교회 장로로 추천되었으나, 복혼(複婚, 소실을 둔)을 이유로 안타깝게도 장로가 되지 못한 것으로 회의록은 언급하고 있다.

경북 안동교회 초대 목사가 된 김영옥
당시, 강원도가 감리교 선교구역이 되자 김영옥은 원주교회 조사시무를 끝으로 오월번 선교사를 따라 신설된 경북 안동 장로교선교부로 옮겼다.
그는 거기서 안동교회 초대목사(1911년 9월~1921년 1월)가 되어, 그 지역에 있는 이대영 등에게 세례를 주고, 후에 경북노회장 때 그때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 목사와 장로 후보자가 있어 그들을 모두 임직시켰다.
당시 오월번 선교사는 대구로 가서 가마를 타고 안동으로 들어갔는데, 그의 조사 신분인 김영옥은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실고 어린 아들(은석)을 어깨에 목마를 태워 부인과 함께 걸어서 죽령재를 넘어 갔다고 한다. 사실 당시의 선교사의 조사는 그 선교사의 월급을 받는 고용자에 불과했다.
그는 신설된 경북 안동선교부의 안동교회(법상동)의 초대목사로, 그리고 수차례애 걸친 경북노회장으로 경안노회를 창설하여 10여 년동안 피땀 흘려 교회와 교역자들을 위해 헌신적 수고를 했다.
그러나 안동에서 그는 잊혀진 한 외지인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경안노회는 그의 지난날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경안노회 공로목사로 추대하여 점촌에 한 문전옥답을 선물로 포상했다. 그의 고향인 황해도 배천에서는 그를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은 그가 배천에서는 아직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대 독립운동가 김은석 목사
2대 김은석 목사는 1905년 연천에서 출생하여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안동에서 자랐다.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풍기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일본 나고야 서부 한인교회 목사로 가셨는데, 조국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1년 반 미결로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해방 후 건국 정치활동에 참여하셨다가 김천소년교도소 교화과장을 시작으로 인천과 서울에서 교정교역에 여생을 보내고, 1952년 인천소년교도소에서 불하받은 관사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김은석 목사의 아들 형칠, 형일, 형태, 형달, 형숙 5형제가 목사이다.
 
뻣어나는 후손들
3대 김형칠 목사는 1923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하여 서울신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삼분교회 목사가 되었는데, 이후 경북과 경남 일대에서 목회를 하던 중 제100회 부산노회 노회장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강원도 태백에서 개척교회를 시무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작고했다.
둘째 김형일 목사는 1926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과 캘리포니아 리틀스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장로교 목사가 되어 캘리포니아 리틀리 한인교회 목사로 시무한 후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법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롱비치 주립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회장을 두 번 역임했다. 미국장로교 무임목사로 계속 남아 있다가 지병으로 파사디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셋째 김형태 목사는 1929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하여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김천 황금동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석사)과 피츠버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학교 교목과 서울 연동교회 목사로 시무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제72회 총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부회장을 역임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으로 봉사했다.
넷째 김형달 목사는 1931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하여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경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잠시 교수와 목회를 하다가 미국에서 영주하면서 외항선교와 일본인 교회를 목회했다.
다섯째 김형숙(형훈) 목사는 1934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대구 계명대학과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군목으로 있다가 도미하여 뉴욕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면서 미주한인장로회총회 설립에 참여하고 총회장을 역임했다.
김형칠 목사의 외동딸은 1956년 경북 풍기에서 출생하여 대전보육학교를 졸업하고, 이성식 목사와 결혼을 하여 사모가 되어 이 목사의 목회를 내조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두 아들 교육에 힘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김형칠의 장남 김형준은 1938년 경북 풍기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서노회에서 전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문서선교회에서 교역하다가 미국유학을 한 후에 회사원이 되어 교회를 개척하고 장로로 시무하면서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중국선교에 힘쓰고 있다.
4대 김형규 목사는 김형칠 목사의 차남으로 인하대학교를 나와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가 목회에 뜻을 두고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교회를 개척하고 미국장로교(PCUSA) 목사로 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또 김대규 목사는 김형준의 장남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하여 클레어몬트대학교와 뉴욕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보다 목사가 되기로 작정하여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훌러신학대학원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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