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에 뒷산을 몇 번 다녀왔습니다. 뒷산을 갈 때마다 화사하게 핀 진달래를 보는 행복이 보통 크지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랬던가요, 꽃에도 마음이 있다고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 피어있는 영혼의 꽃이 연분홍 진달래꽃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가장 먼저 피었지만 가장 오래까지 시들지 않고 꽃잎을 자랑하고 있는 진달래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진달래를 축복 하곤 했지요. 그러나 가장 수명이 긴 꽃도 언젠가는 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여유도 없이 금방 져 버리겠지요. 그래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교인들도 꽃처럼 화사하게 빛나던 젊은 성도들이 이제는 어느덧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저도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맬 때마다 탱탱하고 생기 있던 목이 어느덧 주름이 지고 조금씩 쳐지는 것을 보면서 서글픈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 내 인생의 꽃도 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아닙니다. 저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꽃이 져도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제 인생도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꽃밭 여행자’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황무지를 거닐며 꽃씨를 뿌릴 때 / 눈물이 바람에 씻겨 날아갔지 /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나무처럼 / 가슴에 봄을 품고 황야의 지평선을 바라보았어 / 잠시 꽃밭을 순례하고 싶어 / 벚꽃나무 아래서 하얀 꽃비를 맞으며 섰을 때 / 꽃잎은 나에게 보내어진 연서였음을 알았던 거야... (중략) 꽃잎들의 연서를 손에 쥐고 / 홀로 먼 길을 떠나온 외로운 꽃밭 여행자 / 어느새 해가 저물어 붉은 노을이 질 때 / 문득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진다 / 눈물은 이슬이 되고 / 이슬은 다시 꽃잎으로 피어나리니 / 나도 하나의 꽃잎이 되어 그대의 창가로 날아가고 싶어 / 노을 물드는 꽃밭에 꽃잎으로 떨어지고 싶어.”
그렇습니다. 꽃이 진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봄꽃이 지면 다시 여름꽃이 피고, 가을꽃, 겨울꽃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봄꽃들이 만발하지요. 아니, 그 봄꽃들이 다시 떨어진다 하더라도 꽃밭에 떨어지고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꽃잎은 또 다시 다른 꽃잎을 만들어내지요.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노년이 되고 제 인생의 꽃잎도 다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꽃잎은 또 다른 꽃잎을 만들어 낼 것이고 또 다른 꽃밭 세상을 만들어내어 더 많은 꽃밭 여행자가 찾아오게 할 것입니다.
특별히 제 가슴 속에 새겨진 그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가락동 23평 지하상가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하였을 때 저를 믿고 따라와 주고 눈물로 헌신하며 오늘까지 함께 해 준 교인들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나온 목회 여정을 돌아보면 아슬아슬한 부분도 있었고 풍비박산 날 위기도 있었지만, 함께 비를 맞고 눈보라를 맞으며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새에덴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새에덴의 개척기와 부흥기를 함께 이끌었던 성도들도 대부분 중 ·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설희의 노래를 다시 리메이크해서 불렀던 이선희의 ‘봄날은 간다’의 가슴저미는 대목처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져도 같이 울던” 성도들을 어떻게 제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항상 가슴에 인각 되어 있는데 가사를 이렇게 역설적으로 바꾸어 부르곤 합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져도 같이 웃는 알뜰한 그 헌신에 봄날은 온다.” 그때 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했던 성도들을 가슴 속에 안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