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의 평화
2019/05/10 14: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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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독교의 교회들이 지켜오는 성 금요일이다. 성서 66권의 복음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죽음 사건이고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산 부활로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하였고 고린도전서 15 장 부활 장을 통해서는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헛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기독교는 부활로 서고 넘어진다 하였다.
초대교회 1-3세기까지의 박해의 시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AD.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박해의 시대가 중단 된 이후로 급속도로 세속화 된 기독교는 양적인 확대 재생산은 이루어져 갔지만 그 생명력은 쇠퇴해 갔다. 이때에 소위 사막교부들은 진정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사막으로 달려가 단독자로써 믿음의 부활을 기도했었다.
초대교회가 동서 교회로 나누어지고 급기야 11세기 들어 십자군 전쟁을 야기 시키고 전쟁을 합리화 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생명을 살리려 하는 것이 목적이고 화목제물로 오신 것이다. 물론 불의에 대하여서는 타협을 하지 않고 정의를 통한 사랑의 완성을 온 몸으로 말하였다. 예와 아니오.를 명백히 하신 것이다.
추악한 세속 정치보다 더 타락한 교회들의 교권정치는 성서와 예수의 삶과는 무관하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품화 하는 교권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정당화는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개 교회 세습보다 교회를 타락의 일로로 만든 것은 교권의 세습이다. 신의 이름을 앞 세워 역사를 피로 물들이고 시궁창을 만드는 것이 오늘의 교회인 것이다. 이것을 비판하며 사이비 이단들이 독버섯처럼 민중들을 현혹하고 종교적 착취를 심화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예수는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평화는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복지의 틀 속에서 허구적인 평화를 발견하게 된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자의 삶이 고착화 되고 양극화의 골은 건널 수 없는 계곡이 되어간다. 여야 정치인들 모두 민중들의 복지를 내 세우고 사실은 자신들의 배를 채워가며 민중들, 서민들, 국민들을 조롱하고 있다. 박정희 이후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악은 갈수록 심화 된다. 부익부 빈익빈은 이제는 체질화 되어 있고 상위 1%가 모든 것의 컨트롤 타워가 되고 상위 10% 만이 중 상류층의 삶을 살고 90%는 하위 계층의 삶을 산다. 이것은 세계화를 부르짖는 팍스 아메리카와 신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세계적 현상이며 한반도의 남북과 남한정권하에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재벌과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의 탐욕은 역사적 평화를 무너뜨리고 이미 무너진 평화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 권력과 정치권력은 유착관계를 끊을 수 없는 구조악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나 기타의 종교 세력들은 이러한 자본과 정치세력들과 직간접으로 유착되어 공생과 기생하고 있다. 민중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진정한 복음은 제처 두고 종교적 마약을 투여하고 있다. 종교귀족들은 여전히 종교적 아편들을 통해서 그들의 배를 채워가고 있다. 소위 현재 사회의 삼권의 세력들 (입법, 사법. 행정)들은 서로가 견제와 균형을 말하고 있지만 적당한 타협과 공조를 통해서 자신들의 공고한 자리 보존을 위해서 협력과 타협을 하고 있다. 사법부는 법이라는 강제력을 통해서, 행정부는 국가와 정부라는 강제 힘을 통해서, 입법부는 이 둘 권력의 입맛을 채워가며 공존공생을 모색해 간다. 성 금요일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고통과 아픔, 그리고 고난을 묵상한다.
십자가 처형의 고통 없이는 부활은 결코 없다. 중세( 5-15세기) 천 년을 지나는 동안 교회는 엄청난 특권과 부귀영화를 누렸다. 거기에는 흑암과 명암이 교차된다. 소위 16세기 종교개혁(혹은 미완의 혁명) 이후 개신교는 500년을 지나고 있고 21세기 과학의 첨단을 살고 있다. 기독교화 된 유럽 국가들은 십자가를 앞 세워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를 식민지화 하는데 열을 올리고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닉네임을 갖기도 하였다. 팍스 로마나를 알고 있는 소위 퓨리탄 청교도의 후예인 팍스 아메리카의 미국은 성 금요일을 저신들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보내고 있을까? 며칠 전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이 불타 하늘을 향하던 첨탑이 주저앉았다. 프랑스의 심장이 탔다는 탄식 아래 짧은 시간에 1조 이상의 복구비가 국내에서 거쳤다.
파리의 심장, 세계 유네스코의 유산 등 안타까운 말들이 홍수를 이룬다. 마침 세월호 5주기를 지나는 2019년 4.16일 이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화의 최고봉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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