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일남 목사 가정의 3대 목사들
2019/05/10 15: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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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한 마을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 세계 각지서 향기
1대 목회자 김일남, 2대 선교사 김정웅, 3대 신학자 김바울·김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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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예장합동측과 개혁측의 합동총회가 대전중앙교회당에서 회집되었을 때였다. 개혁측 총대들이 박수를 받으며 입장할 때 맨 앞엔 김일남 목사가 섰다. 떠났던 옛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의 선도자가 바로 그 분이었다.
김일남 목사의 가정은 3대 목사의 가정이다. 그것도 목회자, 선교사, 신학교수 등 특이한 영역에서 헌신하였다. 그 가정의 아름다운 향기를 맡아보자.

특이한 목회 방법들
김일남 목사는 전남 함평군 손불면 산남리 가자울에서 태어났다. 조모가 선교사의 전도지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온 가정이 예수를 믿었다. 김일남은 선교사에게 유아세례를 받았고, 집안에서 많은 목사와 헌신자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 구세군사령관 김순배도 있다. 김일남은 헌신자의 길을 갔다.
김일남 목사는 장로회신학교 제2회 졸업생이다. 조선신학교에 다닐 때 ‘51인 신앙동지회’ 회원으로 김재준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에 저항하여 보수신앙을 지키기에 노력하였다.
그는 평생을 전남 지역에서 목회하였다. 그는 엄다교회라는 시골 섬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면서 안식년을 실시하였다. 그의 안식년은 특이했다. 6년 사역하고 1년을 안식년을 지켰는데, 그 때 교회에 사표를 내고 안식년 후에 재청빙하는 특별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김일남 안식년제도’였다.
안식년의 개념도 없던 때에 그는 선각자의 길을 걸었다. 초창기 엄다교회 시절이다. 첫 안식년을 마치고 재부임할 때 월 3,500원과 잡곡 포함 그의 가족 10식구의 식량만 받을 때이다. 일년 예산의 수지를 뽑을 때(초등 6학년 아들)의 일년 지출이 600원인데 교회의 수입예산이 없어 그나마 삭제해 달라고 했단다. 두 번째 안식년 때 연봉이 42,000원이던 때, 당시 대전대학 1학년에 다니던 큰 아들 용돈은 장부 결산액이 41,500원이고, 김일남 목사는 총신 대학원에서 한국 농촌교회 부흥을 연구하였으니 남은 식구 7명이 엄다에서 그대로 산 것은 광야의 기적과 같은 체험이었다.
후에 농촌교역자 수양회에서 농촌 목회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자녀들 대학과 신학교도 다 장학금을 받아 시켰는데, 도시 목회시는 학비는 지원할 수 있었으나 대학입시에 낙방을 했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목포로 옮기기 전 그 교회는 노회에서 제일 큰교회이지만 분열로 전임자가 부임후 8개월 만에 떠나가버리고 8개월간 공석으로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교회에 주변 목사들의 강권으로 부임했다. 문제가 생기면 교회 당회장실에 들어가 응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럴때면 문제를 일으킨 분이 하나님이 두려워 사과하고 문제들이 풀려나가고, 장로를 선택할 때도 원칙대로 선출하니 하나님께 다른 도시 큰교회로 옮겨 주심으로 교회는 잠잠해 22년간 은퇴할 때까지 그 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철저한 조직과 개혁에 의존해 정상적인 목회를 하였다. 처음 부임해 교회가 막 부흥해 나갈 때,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수양달을 지켰다. 어차피 더워 심방도 못하고 목회도 활발하게 못하니 수양달로 정해 두 주간 정도 목사 장로 수양회나 영적 성장을 위한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고 남은 두 주간은 기도원에 가고, 성경연구에 몰두하였다.

낙도 선교에 힘쓴 김일남 목사
김일남 목사는 전도와 선교도 남다르게 적극적이었다. 교인들에게도 전도를 강조하고 개척교회도 목포제일교회 시절 첫 10년간은 일 년에 한 교회씩 개척하고, 둘째 10년은 매월 한 교회씩 개척하고, 마지막 10년은 하루에 한 교회씩 개척하자고 하며 전교인들 한 가족이 힘을 모다 한 교회씩 개척하자고 아시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주의 종으로 바치든지, 가족들이 한 신학생을 장학금을 주어 키우고 개척교회를 하도록 돕든지, 정 못하면 자기라도 잘 믿어 자녀손이 한 교회를 이루면 된다고 하였다. 당시 김 목사의 모친이 살아 계실 때 자녀손만 126명이었고, 그들 속에 많은 목회자의 중직자들과 선교사들도 있었다.
교회가 성장을 멈출 때는 목사가 은퇴할 때가 된 것이라고 하여 당시에도 65세 은퇴를 주장하였으나 후임을 찾기까지 기다리다가 67세에 은퇴를 하였고, 교회가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성탄절에는 전세계에 아시는 모든 선교사들에게 목포의 김을 선물로 보내기도 하고, 아들이 태국 선교사로 가기 3년 전에 벌써 세계일주하여 태국도 이미 다녀왔다. 해외뿐만 아니라 낙도선교회를 통해 남해에 산재한 도서지방 목회자들의 교회들을 지원하고 불러 훈련하고 격려하는데도 최선을 다 하셨고, 목포의 김 목사 사택에는 풍랑으로 못간 도서지방 교역자들을 위한 숙식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아들 김정웅 목사
김일남 목사의 아들 김정웅 목사는 선교사들이 세운 광주의 숭일 중고교와 대전대학(현 한남대학교) 성문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총신신대원을 졸업한 후, 대전 CCC 간사와 전군신자화운동에 맞춰 동해안 거리에서 묵호까지를 순회전도한 동방사의 군목과 광주중앙교회 부목생활을 거쳐, 1976년 9월 12일에 파송식 후 24일에 태국 방콕에 도착하여 현재까지 태국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출국시 모든 교회들이 어려운 때 인지라 개척한지 일년된 남서울교회에서 장례비조로 생활비를 후원받고 지금까지 개속 선교비를 받고 있다. 첫 안식년에 일리노이주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한 후 태국에 다시 부임해, 1987년에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지구촌선교회를 조직하고 팀사역을 하는 중 한유순 권사를 통해 촌부리선교센타 대지를 구입하여 “지구촌 선교의 교두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모토로 정하고 그간 은혜의 집 고아원과 평화의 집 마약재활원을 하고 신학교와 팔복교회를 현재도 담임하며 앞으로 한국 선교사들의 노후대책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1999년에는 KGM과 PWM 두 선교단체가 GP로 통합하고, 11월에는 인도차이나 한인선교사 창립대회를 호지밍시에서 열고 초대 회장의 역할을 맡아 5개국의 단합을 위해 노력해서 현재까지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미안마에서 돌아가며 매년 잘 모이고 있다.
같은 해 미국 시카고에서 모인 세계한인선교사회 총회시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해 불참했다. 회장으로 추대를 받아 2002년 캐나다 한인선교대회를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함께 가는 선교를 대회장으로 섬겼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완성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선교사들을 규합하고 하나로 뭉쳐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 심부름 하고 있다.

헌신의 길을 가는 3대 목사들
김정웅 목사의 큰 아들 김바울 목사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의 중국인교회와 한인교회 영어예배담당으로 사역하다가 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역을 도우며, 방콕의 지식층을 대상으로 영어성경공부와 영어예배 등을 인도하며 태국 엘리트그룹에 선교하고 있다.
둘째 아들 김다니엘 목사는 미국 시카코의 트리니티에서 M.Div. 와 Ph D.(구약전공) 학위를 받고, 미국 세인트 루이스의 카바난트(Covernant) 신학대학원의 구약학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사범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김일남 목사의 가정과 친족들 가운데 수많은 목사와 장로가 나왔다. 이들을 모우면 하나의 노회가 될 정도이다.
전라도의 한 마을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은 한국, 미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있다. 태국 촌부리선교센터의 선한 영향력이 각지에 가득하고 있어 김정웅 선교사와 이순교 선교사의 헌신을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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