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 교회에서 4대 장로/ 경북 안동교회 이정일 장로의 집안
2019/05/24 16: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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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장로로서 한 교회를 섬긴 아름다운 전통
경북 안동교회, 1대 이중희·2대 이재삼·3대 이인홍·4대 이정일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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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가정은 한 집안에서 한 명의 장로가 나와도 자랑인데, 같은 교회에서 4대가 장로가 된 ‘기적 같은 축복’이 있다.
좀처럼 자랑하지 않는 경북 안동교회 사람들조차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북 안동교회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안동교회에 4대째 장로를 배출한  이정일 장로 집안이 그것이다.
한 교회에서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장로를 배출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려면 첫째 4대가 모두 예수를 아주 잘 믿어야 하고, 둘째 이민이나 이사를 가지 않고 한 고장에 살아야 하며, 셋째 대대로 장로가 될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하고, 넷째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평화로워야 한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984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거행된 선교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 교회에서 4대째 장로로 섬기고 있는 이정일 장로 집안이 기념패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예장통합 경안노회로부터도 기념패를 받았다. 당시 함께 기념패를 받은 4대째 목사, 장로 가정이 모두 다섯 가정이었다고 하는데, 한 교회에서만 4대를 섬기는 집안은 이정일 장로 집안이 유일했다고 한다.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20세기 현대사에서 요지부동으로 한 교회만을 4대에 걸쳐 섬기며 계속해서 장로를 배출했다는 것은 그 정도로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1대 이중희 장로
이정일 장로의 증조할아버지인 이중희 장로는 185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한학으로 독학을 하여 송천학당을 설립하고 계몽운동을 하신 분이다. 이중희 장로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좀 특이하다. 아들이 김천장에 갔다가 전도지를 한 장 얻어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온 집안사람들이 다 이를 읽고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라서 길이나 전철에서 전도지를 나눠 줘도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그때는 워낙 읽을 게 없던 시절이라 전도지 한 장의 위력이 그토록 엄청났던 모양이다.
예수를 믿게 된 이중희 씨는 1907년 대구에 선교사로 와 있던 미국 북장로교 부해리 선교사와 함께 김천군 아포면 송천동 고향마을에 송천교회를 세웠다. 그 후 부해리 선교사가 안동에 왔다가 안동교회에서 세운 계명학교에 여학생을 지도할 교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중희 씨를 초빙해서 교사로 모셔 오게 된다. 그때가 1913년이었다.
안동으로 이사해서 계명학교 교사가 된 이중희 씨는 안동교회를 열심히 섬기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15년 안동교회 장로가 되었다. 이중희 장로는 한학을 한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사상을 가진 분이었다. 남녀평등, 계급타파, 미신타파를 부르짖으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일깨웠다.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이중희 장로는 만세운동을 계획하다가 안동교회 김영옥 목사 등과 함께 일제의 예비검속에 걸려 안동경찰서에 열흘 동안 구속되었다 풀려났는데, 이 일로 병을 얻어 그해 3월 1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에 이른다.

2대 이재삼 장로
이중희 장로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그의 아들 이재삼 장로 덕분이었다. 이재삼 장로가 1905년 김천장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또는 장에 갔더라도 전도지를 받아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에 한 교회 4대 장로 집안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재삼 장로는 아버지를 따라 안동에 이사 온 후 안동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교회에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나서서 객지에서 온 교인들을 열심히 봉사했다고 한다. 성품이 워낙 진실하고 열성적이었으며 인정이 많아서 사람대접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해방 후에는 교회 부흥전도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에 의해 통폐합된 경안노회 교회들을 다시 일으키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48년 아버지에 이어 두 번째로 안동교회 장로가 된 이재삼 장로는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 등을 맡아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1956년 캐럴송이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된다.
이정일 장로가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증조부님은 한학을 공부하신 후 교사 생활을 하셨어요. 할아버님 때문에 증조부님도 예수를 믿게 되셨죠. 안동에 오셔서 5년 만에 장로님이 되셨어요. 3.1운동 때 안동교회에서 만세운동을 논의하시다 일제에 잡혀서 안동경찰서에 끌려가 어찌나 고문을 당하셨는지 나오신 뒤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뭐 거의 다 어른들께 들어서 알고 있는 거예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또릿합니다. 인정이 많아서 남 주는 거 참 좋아하셨어요. 일 년에 한 번씩 성소병원 직원들 불러다가 식사도 하시고, 과수원 과일을 따다가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것도 좋아하셨지요. 밭에서 나올 때는 한 지게 가득 지고 오시다가 동네를 거치면서 다 나눠 주시니까 집에 들어올 때는 빈 지게로 오실 때가 많았어요.”

3대 이인홍 장로
이정일 장로의 아버지인 이인홍 장로는 1919년 3.1운동 당시 임동협동학교에 재학중이던 열아홉 살 나이로 안동교회 청년회 일을 하며 만세운동에 앞장서다가 구속되어 6개월 형을 살고 풀려났다. 3.1운동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적극 가담해서 다 구속되었다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손자는 6개월 뒤에 풀려났으니 국가관이 투철한 애국자 집안에 불어 닥친 시대적 아픔이었던 셈이다.
그 후 이인홍 장로는 안동역 앞에서 6.25사변 전까지 사진관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1964년에는 3대째 장로로 임직하여 장학기금 설립에도 앞장서서 많은 기부를하였으며, 안동댐 경내에 있는 광복지사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독립사 출판사업회를 조직하여 《독립사 안동판》이라는 책자도 출간하였다.
1992년 광복절이 조금 지난 8월 24일 노환으로 소천하신 고 이인홍 장로에게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이 수여되기도 하였다.

4대 이정일 장로
이정일 장로는 이인홍 장로의 7남매 중 유일하게 대를 이어 안동교회를 섬기며 제직회 서기, 성가대장 등으로 일하다가 1983년 안동교회 장로가 되었다. 이로써 안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4대 장로 가문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정일 장로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안동지점장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뒤 아직까지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면서 젊은이들 못지않게 땀 흘려 일하고 있으며, 안동교회에서 설립한 안동중앙신용협동조합 이사장과 경안노회 평준화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궁금해진다. 과연 5대 장로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정일 장로에게는 딸 넷, 아들 하나 다섯 남매가 있다. 하지만 4대 장로 어른들이 사시던 시대와 지금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너무나 다르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제가 딸만 내리 넷을 낳은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아들을 안 주시려나 보다 생각해서 포기하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아들을 주셨어요. 이것 참 신기하죠? 그래 제 아내가 이런 거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아들이 생겼으니 5대 장로가 되어야 할 텐데…. 아들이 수원에 가 있어요. 거기서 직장 생활하고 해야 하니 글쎄 5대 장로가 되려는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부러웠다. 정말 복 받은 가정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어 복의 근원이 되었듯이 이중희 장로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긴 결과 4대째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대를 이어 장로로서 한 교회를 섬기는 엄청난 영광을 누리며 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정일 장로 집안이 이런 값진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수 있었던 것은 어른들을 극진히 모시고 순종하면서 선조들의 신앙을 잘 이어받고 따르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교회 사람들이 웬만한 시련과 고난 앞에서는 쓰러지지 않고 견고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오래 참고 기다리는 법을 아는 것, 나를 비우고 양보하고 먼저 순종하는 미덕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이런 가문의 내력과 집안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때문이 아닐까. 좋은 신앙을 가지려면 좋은 신앙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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