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18
2019/05/24 16:4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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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2(행 2: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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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순절애 성령세례를 받은 베드로는 새 술에 취했다고 자기들을 조롱하는 유대인들에게 자기들이 성령세례를 통하여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받았음을 설명하고, 이들에게 “성령의 선물”(δωρε、 του˜α′γι’ου πνευ’ματοV)을 받으라고 말했다(행 2:38). 새언약의 선지자요 하나님의 입으로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그는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베드로는 분명히 성령세례와 성령의 선물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고 40절에는 “이 사악한 세대에 구원을 받아라(σω、θητε).”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말하는 “성령의 선물”은 “성령세례”와 구별되는 “구원”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생을 포함한 영혼의 구원을 의미하는 말이다. 결코 그들을 향하여 지금 이 상황에서 선지자가 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성령의 선물”과 유사한 말로 “(성령의) 은사”라는 말이 있다. 성령의 선물이라는 말을 쓸 때 헬라어 “도레아”(δωρεα)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라는 말을 쓸 때는 “카리스마”(Χαρισμα)를 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카리스마” 앞에는 “성령”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은사”이다.  영역본에서는 “성령의”라는 말이 없이 “gifts”(선물들, 은사들)로 복수를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은사라는 말을 쓸 때 많은 경우 앞에 성령을 붙여 “성령의 은사”라고 말한다. 은사가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성령의 선물”과 “성령세례”, 그리고 “(성령의)은사”라는 말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서 많은 혼돈을 야기 시키고 있다. 또한 서양의 역본들도 헬라어의 “도레아”와 “카리스마”를 다같이 “gifts”로 번역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은사일 경우 복수를 쓰는 것은 좀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도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물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는 분명 중생과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시대 이후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는 일이다. 따라서 성령의 선물이라는 말은 성령세례를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사” 곧 “카리스마”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재능(talent)을 말한다.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특별한 재능을 주시는 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을, 병 고치는 은사를, 기적 행함을, 예언을, 영들 분별함을, 방언을,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이것을 통하여 성도들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성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은사 가운데 특별히 방언이 문제이다. 방언은 은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에 제자들을 새언약의 선지자로 인치는 데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셨다. 선지자들을 구약에서 “하나님의 입“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들의 입에 성령으로 도장을 찍고, 여러 나라 말을 넣어 주시어 각각 다른 나라 말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통역이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게 하셨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다른 교회에서 행한 방언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말(혹은 발성)을 하고, 통역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모조방언“(Counterfeit Tongue) , 혹은 ”유사방언“(Pseudo-tongue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성령세레의 증거로서의 방언, 엄격하게 말하면 ”언어“와 하나님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분명 다른 것이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방언으로 말한다고 했다(고전 14:18). 그리고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다(고전 14:39-30). 그러나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고 또 질서 있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몇 가지 지침을 주신다. 방언을 하려면 그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해야 하고,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하며, 교회 안에서 하려고 할 때는 많은 사람이 악을 쓰며 한꺼번에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며, 꼭 대중 앞에서 하기를 원할 경우 두 세 사람만 나와서 차례로 하되, 반드시 통역을 두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의 성도들은 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교회를 어지럽힌다. 방언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기본 목적과 원리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전 14:12).
우리는 오순절을 맞으며 성령의 선물, 성령세례, (성령의) 은사 등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한 설명과 이해가 필요함을 살펴보았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가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할 선지자적 사명을 부여받은 선지자들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는 성령을 우리 뜻대로 부릴 수 없다. 우리가 오시라고 해서 오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시라고 해서 가시는 분도 아니다. 성령은 그의 뜻대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시다.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이 머무는 곳에 성령이 머무시며,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일하신다. 따라서 성령이 일하게 하시려면 우리는 말씀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야 한다. 말씀이 충만한 곳에 성령이 충만한 것이다(겔 3장). 내 속에 말씀이 충만해야 성령이 내 안을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며, 나를 충만하게 하신 성령이 나를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에 말씀이 충만해야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고 교회가 부흥한다. 사도 바울이 본의 아니게 에베소를 떠나며 에베소 장로들에게 주시는 고별사는 항상 우리가 새겨야 할 말씀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니, 그 말씀이 너희를 굳게 세우고 거룩함을 입은 모든 이들 가운데 너희에게 유업을 줄 것이다.”(행 20:32). 그는 그의 양떼들을 성령께 부탁한다고 말하지 않고, 말씀께 부탁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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