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제 기독교의 역사 진종학 목사의 5대 목사 가정
2019/06/07 11: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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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섬에 뿌려진 믿음의 씨앗 5대 목사 가정 이루어
1대 진종학, 2대 병효, 3대 형봉·덕봉, 4대 상권·상복·상민, 5대 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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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교회에서 대를 이어 헌신한 가문의 사역 연수를 무엇으로 계산할까? 도시 지역도 아닌 거제도와 영남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이름없이 섬긴 이들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두가정 밖에 되지 않은 5대 목사의 아름다운 가문에 거제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가정을 탐구한다.

거제도에 복음의 전래
부산 경남 지방의 선교는 호주 장로교회의 공헌에 지대하지만, 거제도 지방 선교는 부산, 진해, 통영 등지에서 활동한 선교사들, 특히 손안로(A. Adamson)와 왕길지(G. Engel) 선교사의 영향이 켰다. 거제도 지방 선교는 1913년 설립되는 호주 장로교회의 통영선교부를 통하여 구체화되지만, 초기 거제도에서의 기독교 전파는 이 두 선교사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거제 지방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거주민들의 개방적인 성향으로 내륙보다 신속하게 복음이 확산되었으며, 피난민과 포로 수용과 같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기독교인의 수가 증가한 것이다.
거제를 책임지고 있던 통영선교부는 호주장로교 해외 선교부의 ‘전진운동(Porward Movement)’이 한창이던 1913년에, 경남지역 5개 선교지부 중 하나로 생겨났다. 통영 선교부가 담당한 지역은 거제, 칠암, 고성 지방이었다. 호주장로교 해외선교부는 타 선교부에 비해 의료 활동이 미진했지만,  통영에서는 부산과 같이 아동 건강관리소를 운영하고, 선박으로 위급한 섬사람들을 후송하여 치료받게 했다. 그런데, 1892년 내한한 무어(Miss E. B. Moore) 선교사가 1894년 이래로 통영선교부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왕대선 선교사는 1910년 이래로 꾸준히 통영 일원과 인근 도서 지방을 순회 전도하였다. 이 도서 지방에 포함된 곳이 거제도였다.

거제도의 첫 교회: 구영교회
진해 웅천에서 거제도에로의 기독교 유입의 예는 구영교회 설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구영교회 첫 교인으로 알려진 신삼동, 신암혜, 김세율 등이 진해 웅천의 주성윤으로부터 복음을 받았다고 한다.
부산과 거제 사이에는 기선의 정기 운항이 있을 정도로 왕래가 잦았다. 지리상으로 통영을 돌아서 거제로 오는 것보다 부산이나 진해 웅천에서 거제도의 북부 지방인 거제도 장목면 일대로 들어오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왕래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천주교의 유입 경로를 보더라도 진해 웅천을 통해 유입되었듯이 기독교도 진해 웅천이나 부산에서 거제 북부 지방 특히 천연 항인 구영리 부근으로 접근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구영리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설립된 자료는 찾지 못했다.
구영리는 거제도 북쪽의 장목면 중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육지의 부산, 특히 진해와는 왕래가 잦은 곳이다. 구영교회는 거제지역 최초의 교회로 추정되고 있지만 사료가 부족하다. 장목면에 거주하는 몇몇 사람들은 1894년에 구영교회가 설립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거제교회백년사』에서는 1894년에 최초 신자인 신삼동씨가 진해 웅천의 주성윤씨로부터 복음 듣고 1900년쯤 친인척으로 하여금 구영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복음을 수용한 신삼동, 신암혜, 김세율 등 가족은 송진, 농소, 황포 지역을 순회 전도하였고, 그 결과로 구영교회를 시작으로 농소(1918), 황포(1922), 송진교회(1924)가 분립되어 갔다. 구영교회 기틀을 잡은 선교사는 왕대선으로 알려져 있으나 설립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손안로 선교사이다. 즉 손안로 선교사의 전도로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 후임 왕대선 선교사에 의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다.

1대 진종학 목사(1882-1968)
진종학 목사는 거제도의 초대 목사로 거제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는 거제도뿐만 아니라 경남 지역 여러 교회들을 돌보았다.
부산에 거점을 둔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마산, 통영, 진주 등지에 스테이션을 두고 경남 지역 전도에 진력하였다. 거제도는 이 선교 구역에 속했고 보수적 신앙 전통을 지켜 나갔다.
진종학은 경남 거제 사등면 사등리에서 출생하여, 손안로 선교사에 의해 세례를 받았고, 1914년 부산진 성경학교에서 3년간 수학하고 조사로 활동하였다. 1917년 경남노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26년 19회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 후, 고성읍교회에 청빙을 받아 시무하였다. 1944년 5월 26일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경남교구 통영지구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5년 이후, 욕지도, 옥포, 상리, 동항제이, 통영 충무교회 11대, 13대 목사로 시무하였으며 1968년에 별세하였다.

2대 진병효 목사
대를 이은 신앙의 전통이 계승되었다. 진병효 목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세의 나이에 전도사 사역을 시작, 일제 치하에 항일사상으로 모진 고문과 옥고 등 압박을 받으면서도 굳건히 복음 사역을 감당했다. 진병효 목사는 해방 직후 비록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8월 17일, 해방 후 출옥을 감사하는 첫 주일에 예배를 드리던 중 예배당을 난입한 일본 헌병대에게 교인과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모진 폭행당하는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결국 진 목사는 자녀들의 눈물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부친에 앞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일제에 항거하다가 옥중 고초를 당했고, 해방의 기쁨 속에 고통 중에 별세했다.
그후 대한민국 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3대 진형봉 목사
3대 진형봉 목사(1932년생, 현재 거제시 장승포 거주)가 목회자로 사역을 은혜 중에 잘 마감할 수 있었던 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태어나기 전 이미 목회자의 가정으로 살아오며 목격하며 겪어야 했던 상상키 힘든 어려움 탓에 젊은 시절, ‘예수는 믿어도 평신도로 믿으리라’ 생각하고 오랜 동안 부르심을 외면하며 살아온 나날들 때문이다.
부친의 순회 전도사역을 보고 가족들과의 생이별이 두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목회자의 길을 갔다. 큰 교회 목사도 아니고 이름난 목사도 아니지만 헌신자의 길로 나아갔다.
이때부터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을 그의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또 다시 물려줄 수밖에 없음을 늘 안타까워했는데 양심의 가책 없이 소신껏 목회해 오던 중에 아들 삼형제 모두가 목회자의 길을 따르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두 딸 또한 모두 장로 가정의 며느리가 되었고, 아들들은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일선에서 뛰고 있으니 가족이 모이면 그야말로 교회 살림, 목양의 어려움과 보람 등을 나누는 것이 언제나 관심이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조부님의 그늘이 늘 제게는 부담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하려 할 때만 해도 많은 지역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성자로 기억되던 조부의 영향은 오히려 처신에 어려움을 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도 일관되게 희생이 있을지언정 ‘다툼과 분쟁’ 없는 목회를 실천해온 모습에 대한 기억들이 알게 모르게 목회철학과 소신으로 자리 잡아 그의 사역을 인도했다.
젊어서 너무 고생스럽게 보였던 부친의 목회담이나 안정된 목회 현장 같은 것은 아니어도 목회사역에 그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습’이 또 있을까.
‘적당히 하는 것은 없는 목회’라는 그의 평소 소신도 산 순교자로, 힘들고 어려운 농어촌 교회를 순회 목회하며 일생을 살아오신 선대들의 유산이 있기에 배고픔도 온갖 오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나갈 수 있었다.

4대 목사의 아름다움
50세가 넘어 안수를 받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진형봉 목사의 동생 진덕봉 목사와 함께 장남 상권 목사(구미 양무리 교회)를 비롯해 차남 상복(거제 아름다운교회) 그리고 삼남 상민 목사(양산 양울 교회)가 4대를 이루고 있다.
만학으로 아들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어려운 집안 살림을 쪼개고 또 쪼개어 살림해 온 부인 홍복희 여사는 목회자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며느리들에게 ‘찬송하고 기도하며 사는 생활에서 발견한 즐거움’을 살림을 가르치듯 정성을 다해 전해준다. 순교자의 희생 위에 세워졌던 한국교회, 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걸어 온 진 목사 가정의 가게 속에서는 이 땅에서의 영광된 기록보다는 오히려 힘겨웠던 이 민족 교회의 이름들이 더 먼저 만나게 된다.

영광의 5대 목사 가정
진 목사의 가정에 5대 목사의 영광이 왔다. 2019년 봄노회에서 진주영 목사(부산 산성교회 부목사)가 장립을 받아 우리나라 두 번째 5대 목사 가정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다. 이 믿음의 뿌리가 아름답게 뻗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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