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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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실존주의 철학자 생텍쥐페리의 저서 ‘어린 왕자’에 나온 이야기를 읽고 있다. 내용을 보면 ‘어린 왕자’의 첫 장면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한 생텍쥐페리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왕자’에서 어른은 지구상의 인간 일반을 지칭한다. ‘어린 왕자’의 눈에 비친 지구별 인간의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왕처럼 군림하는 사람들로 지극히 권위적인 사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하인 양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명령하고 주문한다. 주관적 합리성의 감옥에 살며 세상의 기준이 자기인 갑질 인생들이다. 화자는 이런 사람을 ‘절대군주’ ‘우주의 왕’이라고 표현한다. 왕처럼 군림하는 사람은 자기 점검, 자기 성찰, 자기 심판을 말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그것을 적용하지 않는다. 승인되고 정당화된 권위가 아닌데도 자기절대화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둘째,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느낀다. 허영꾼은 자기가 가장 잘 생기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누구보다 돈이 많고, 최고로 똑똑하다고 확신한다. 근거 없는 확신에 가득 찼기에 그들은 나르시스트이다. 허영꾼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물을 필요가 없다. 자기 객관화 능력이 제로인 과잉 자기애 환자들은 늘 행복하며 그 행복은 자기 생산적이다. 허영꾼에 박수를 보낼 것인가? 일침을 가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존재의 진실을 말해주는 순간이 있다. 셋째, 술주정꾼이다. 세상에 제일 많은 이들이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운지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실행력이 부족하다. 부도덕적 감정을 갖고 있지만, 도덕적 규범을 지키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관례였다’ 말하고,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한다. 생텍쥐폐리에게 이들은 술주정꾼과 다를 바 없다. 오늘도 세상은 술을 권하며 누구는 홀로 술을 마신다. 넷째, 사업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업가는 목적 지향적이다. 자나 깨나 별을 센다. 그리고 그 별은 곧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성취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 오직 자기 이해에만 민감한 사람이 사업가적인 인간이라고 생텍쥐페리는 규정한다. 다섯째, 가로등을 켜는 사람으로 명령에 충실하다. 따를 것인지, 거스릴 것인지 명령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삶을 기획하지 못한다.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있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와 같은 인간이며 판단하지 않는 영혼 없는 충성심의 소유자이다. 성실성의 이름으로 보상 받기도 하고 때론 운명론자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여섯째, 지리학자이다. 생텍쥐페리는 이론적 인간적인 유형을 지리학자로 표현한다. 그는 서재를 떠나지 못하며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한다. 지극히 사변적이며 현실의 치열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원칙을 강조한다. 현실감각 없는 원칙은 이념적 편향성을 선명성으로 착각하게 하며 순수성을 강조한다.
이런 지리학자는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칙관계, 즉 자기 생각의 수정과 교정에 대한 감각이 마비돼 있다. 벽창호의 모습으로, 흘러간 옛 노래만을 부르는 지리학자는 구름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자신의 경험을 이론으로 둔갑시키는 지리학자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살다보면 우리는 이 고약한 지리학자로 인해 골치 아파하지만 자기 반성력과 새로운 것의 대담한 수용, 그리고 시대 변화 의식이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앞서 말한 군상들이 20억 명 정도 산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왕처럼 군림하는가? 허영심에 가득 찼는가? 술주정꾼이나 사업가로 사는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인가? 지리학자인가? 만일 이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의 의미를 갖고 보람진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 나를 내놓기로 작정한 사람은 사사로운 일에 연연치 않는다. 사리사욕도 추구치 않는다.
모든 것에는 끼리끼리 모이는 성질이 있다. 그릇이 크다면 공익에 헌신할 것이고 자기만 챙긴다면 내 몸 하나만 건사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만을 위한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는 살아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흔적으로 남는다. 행위로 기록된다. 사는 것과 먹는 것이 거기에서 거기라고 한다면 좀 다른 것을 추구해도 되지 않을까? 먹을거리, 입을 거리, 놀거리, 재산 모으기, 명예, 권력 등에 대한 탐욕은 그만 부려도 좋을 듯싶다. 소유로 사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말이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나눔 운동가이자 기부문화운동가이다. 100개 중 99개는 자신의 것으로 하되, 나머지 1개를 세상에 내놓는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누는 ‘나눔 롱테일’을 만들었다. 롱테일 기부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기적이자 변화의 씨앗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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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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