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서 보내리라(출 23:20-33)
2019/07/05 12: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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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십계명의 돌판을 직접 새겨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시내산에 오른 모세가 성막 건축에 소요되는 각종 예물에 관한 계시를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재료며 규모며 방법 등을 세밀하게 지시해 주셨다. 재료는 백성들에게 받을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같은 귀금속류를 비롯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들을 받아 지을 지니라. 이러한 성막 건축을 위해 헌물을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궁핍한 신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학 2:8). 따라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추진해 가시는 외부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거룩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단독적인 사역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는 것을 더욱 기쁘게 여기신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성스런 협조를 원하신다. 사실 이를 위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당시 애굽 백성들로 부터 많은 재물을 얻도록 조치 하셨음을 알 수 있다(12:35). 이 중에는 금이나 은처럼 비싼 것도 있지만 가는 베실이나 염소 털처럼 싼 예물도 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알맞은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오직 예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사1:11).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속죄소’라는 단어에는 본문에 볼 수 있는 대로 난외라는 “주”가 달려 있다. 혹은 시온좌 (mercy seat)라고도 한다. ‘속죄소’의 예표하는 바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쏟아붓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도록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막아 주셨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매달려야 했을 십자가다. 내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내 옆구리에 창을 받았어야 했었다. 그것이 율법의 요구이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에 나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목이 말라 하시면서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괴로워하시면서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22절을 보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에서 ‘거기서’라는 장소는 율법을 덮고 있는 속죄소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어디 인지를 보여 준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리라” 어디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들판입니까? 산속입니까? 광야입니까? 여러분이 헤매고 다닌 그 어느 곳에서도 속죄소를 통해 만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구주 예수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속죄소는 다름이 아니라 창세기의 에덴에서 추방당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 간에 만남의 장소이다. 속죄소 위에서 나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와 연약함과 삶의 비극들을 그곳 속죄소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초청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 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죄 많고 더러운 인간에게 지존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을 뵈옵고 교제를 나누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겠다고 하신다. 속죄 소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 안에 있는 하나님만이 죄인의 벗이며 죄인의 문제를 들으시며 인간의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당하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찌니라”(4:16) 이제 우리 앞에는 가로 막힌 것이 없다. 휘장은 걷히고 율법은 덮이고 말았다. 가로막힌 휘장은 찢어졌다.
하나님을 알현하는데 어떤 복잡한 조건들도 다 걷히고 말았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거기에 제물과 대제사장이 있었다. 이 계시가 새 언약 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사 단번에 드려 주심으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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