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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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1;4)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면서 만물이 살아있는 생명으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와 지식과 명철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공아래의 물에게 한곳에 모이라고 말씀 하시니 물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그 아래에 깔린 땅을 나오게 하신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지혜입니까?(3:19)

 

창조주 하나님은 지혜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누구신가 요한이 추적해 보니 예수님이십니다.(1:14)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 사는 땅에 내려 오셔서 사람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 속에서 사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신도 그렇게 한 신은 없습니다. 더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사람 사는 땅으로 왜 내려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내려오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신 창조되지 않은 지존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체를 입히시니 육체의 한계만큼 존재합니다. 육체의 눈으로 보니 영의 세계가 안보입니다. 보이는 육체의 마음과 육체로 생각하니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영이 운전하고 영이 제어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영혼의 작동이 멈추면 육체의 욕망은 제어가 안됩니다. 그야말로 죄인입니다. 죄인과 지존자의 진짜 사랑이 가능할까요? 사랑에서 나오는 친밀한 소통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시기로 작정하셨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십니다. 나를 책임 지려고 사랑을 위해서 치러야할 모든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 올라갈 수 없으니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땅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창조주가 나를 찾아내려 작정하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 오셨는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산 넘고 물 건너 땅 끝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를 찾아내셔서 만나셨습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 만신창이가 되었더라도 창조주가 그렇게 내려오셔서 나를 찾아내서 손에 꼭 붙드셨으니 이제 된 것입니다. 창조주는 나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음을 뛰어넘으면서 그 사랑을 지키셨는데 사람은 그 사랑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목숨 걸고 지킨 사랑을 멸시하고 십자가의 창조주를 짓밟으면서 느낌 없이 다시 죄를 짓는 것에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연약해서 넘어질 수는 있지만 그때 마다 심판자 하나님 앞에 창조주의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들고 회개를 다짐하면 창조주는 그 십자가를 기억하며 나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 죄 때문에 주님 앞에 가까이 못 간다는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큰 빛으로 비추이니 짙은 어둠이 인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둠이 조금씩 빛을 인지하면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내안의 모든 어둠의 일들이 물러갑니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맘대로 안되서 고통 받는 어둠의 일들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건 알지만 움직이지 않아서 못하는 어둠의 결박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진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어둠의 흔적들, 그 흔적들이 결박이 되어 묶여 버린 저주 받은 인생의 고통들....빛이 들어와야 어둠이 물러가면서 결박이 풀어집니다. 풀어져야 자유롭게 숨쉬고 삽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목숨 걸고 지킨 사랑 때문에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사랑을 누가 끊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은 다시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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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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