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신앙 이야기
2019/08/01 09: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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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철학자 중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신앙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 중 키에르 케고르는 참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저서를 읽어 본 독자라면 그를 철학자보다는 기독교인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 그의 향기 나는 신앙을 생각해 본다. 그는 자신이 유년기에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평생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술회 한바 있다. 한때 성직자가 되려 했고 수많은 종교 관련 책도 집필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의 출생의 비밀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미카엘의 집 하녀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요즘 말로 아버지 미카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를 임신했다. 훗날 아버지는 그의 모친과 결혼하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자신보다 먼저 떠난 자식들의 죽음을 보면서 많이 괴로워했고 자신의 죄책감을 상쇄하기라도 하듯 키에르 케고르에게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시켰다.
 성년이 된 키에르 케고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기독교인 가정의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혼란이 더 컸을 것 같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허무, 죄, 벌, 죽음, 신, 우울한 징조였다. 그렇다고 키에르 케고르가 하나님께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인 반발인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버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사건은 키에르 케고르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출생의 비밀, 어머니에 대한 연민,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반발심, 증오의 대상으로서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탐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키에르 케고르의 모습으로 만든 단서로 작용했을 것 같다. 우리는 어떠한가? 죽음이 우리 주변에 나타나지도 않고 찾아오는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지 않는가?
 이에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취하라’ 즉, 죽음에로 앞당겨 달려가 보라고 권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영원한 삶은 인류의 오랜 꿈인데. 그런데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자발적인 안락사, 순교자, 목숨을 던지는 전쟁영웅이 아닌 이상 그의 말처럼 인간은 죽음 앞에서 도피한다. 왜 하이데거는 죽음에로 미리 앞서 달려 가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제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10년 혹은 20년 후 나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흔적을 남긴 채 어떤 죽음으로 타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죽음의 순간에 내가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던 일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죽음에로의 선구란 미래의 사건으로서 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미래의 죽음의 사건이 현존재인 나의 세계와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로 제공해 줄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에의 선구는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미리 죽음과 직면해보는 실존의 중요한 사건이다. 자기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규정하는 위와 같은 실존적 사건을 내적으로 감행할 때 지금과 다른 삶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제 던져진 존재에서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살다가 불시에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야기이다. 식민지 알제리의 이민 2세인 카뮈는 포도 농장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출생했다 출생한지 1년 만에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에 징집되어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그의 어머니는 청각 장애인이었고 문맹인 이었다. 그는 부성을 그의 외삼촌과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에서 찾았다. 이후 ‘이방인’ 그는 스스로 이 소설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술회한바 있다.
 이후 출간된 ‘시지프신화,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 등은 그를 실존 소설의 대가로 각인시켰고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을까? 그가 자전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 중의 한 해에 그만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것도 그가 말한 삶의 부조리일까?
 키에르 케고르도 질랜드(zaeland)로 불리는 경험이 인생의 중대한 터닝 포인트였다. 대학 시절 그는 코펜하겐을 떠나 덴마크인들이 자주 찾는 질랜드 등 섬을 두루 여행했다. 먼 바다와 아득한 풍경을 보고 절벽 위에서 맞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했고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질랜드 사건은 자신의 내면을 알고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 ‘실존적’ 사건이었다. 그의 삶은 이 사건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나뉜다. 그는 마침내 성경의 탕아처럼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키에르 케고르처럼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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