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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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핵심 선교는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용어 속에서 선교사의 발걸음을 인도한 길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선교사로서 우리에게 영원한 교훈을 주고 있는 바울도 로마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서 복음을 증거 였다.
  필자는 몽골로 출발하기에 앞서서 몽골 제국이 갖고 있는 통치 전략적 요소 가운데 역참 네트워크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글을 김호동 교수의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칭기스칸이 오논 강가에서 깃발을 세운 것이 1206년이고 쿠빌하리가 항주를 함락함으로써 남송을 무너뜨린 것이 1276년이라면 적어도 7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들은 정주지대에 대한 정복이 끝난 후에도 몽골 지배층 내부의 헤게모니 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그와 함께 농경지대에 대한 약탈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유목민 출신의 몽골 지배층도 농경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생산활동을 방해하지 말아야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와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몽공제국이 초기의 정복전을 끝난 후에도 울루스들간의 무력충돌, 농경민에 대한 억압적 행위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더욱 심했다. 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오랫동안 분열기를 끝내고 정치적 통일과 안정을 바탕으로 놀라운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다. 몽골제국은 동쪽의 태평양에서 서쪽의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 거의 대부분이 단일한 정치질서 속에 편입되고 안정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들에 의해 실현된 이러한 질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동서 대 교류가 바로 ‘팍스 몽골리아’였던 것이다.
   인류역사상 초유의 대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연결해 주는 교통과 통신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몽골인들은 당시 다른 어떤 민족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동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이었는데 아무리 기마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를 한 번에 주파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말을 갈아탈 수 있는 일종의 릴레이 시스템으로서 역참이라는 것을 두었는데 그것을 몽골어로 ‘잠’이라고 불렀다.
  몽골인들의 역참이 언제 처음으로 건립되었는가를 밝히기는 용이하지 않으나 이미 칭기스칸 시대에도 역참이 활용되었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몽골 역참제가 보여주는 첫째 특징은 그 규모의 방대함이다. 둘째 특징은 역참이 공적 인원과 물자의 운송을 담당하는 포괄적 운송 체제였다는 점이다. 셋째 특징은 역참의 운영을 전담하는 특별한 호구, 즉 ‘참호’를 두었다는 점이다. 참호에서 차출되어 역참을 관리하는 전담 인력을 ‘참치’라고 불렀다. 넷째 특징은 몽골제국의 역참제는 인원, 정보, 물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역참과 참호를 설치한 것 이외에도, 특별히 문서의 전달을 위해 ‘급체포’라는 전령 시스템을 운영하였다. 역참을 담당하는 참호들은 말이나 나귀 혹은 수레나 배 같은 운송 수단은 물론이거니와 정돈된 숙소와 침구를 준비해야 하고 나아가 행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역참을 이용하려면 특별한 증빙물을 소지하고 제시해야 하는데 이러한 증빙물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먼저 역참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패부와 문서가 있었다. 패부와 문서와 함께 ‘벨게’라는 또 다른 문서 포마차찰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는 여행의 사유, 인원, 노선 등을 기재하였다.
  몽골 제국은 이처럼 합당한 증명서만 보여 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역참 루트를 따라가면서 운송수단과 식량과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포괄적 교통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몽골 제국의 역참 제도는 이제까지의 어떤 교통, 통신 네트워크보다 더 발달되고 포괄적인 것이었지만 오히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하여 제국의 인적, 물적 유통을 지나치게 역참 시스템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것은 결국 역참 운영을 책임지고 있던 참호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결국 몽골 제국 말기에 이르러 역참제는 초기의 활력을 상실하고 사실상 그 기능이 중단되었다.
  13, 14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몽골제국의 전역에 설치되어 유라시아의 기간교통망의 기능을 하던 역참제가 후대에 깊은 영향을 남긴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유럽에서 역참제의 출현도 몽골제국의 영향과 무관하지는 않는 듯하다. 팍스 몽골리아 리서치를 위해서 몽골을 방문한다. 이번 여행이 몽골 선교를 위해서 멋있는 전략을 도출해 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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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몽골리카의 선교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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