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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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1년 가을,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어촌에 괴기한 소문이 번진다. 고요한 달밤, 파도 소리 너머로 흐느끼듯 신음하듯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는 것. 유럽세계를 들뜨게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죽은 지 1년 반쯤의 일이다.   
파가니니의 시체는 방부 처리해서 니스의 어떤 집에 안치했다. 아들 아키라와  변호사인 친구는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당국에 제출한 매장허가 청원을 교회가 심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았다. 파가니니를 둘러싼 기괴한 소문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기 때문이었다. 이제나 그제나 소위 구경꾼들의 속성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듯, 소문은 만들어지고 덧붙여지기만 했다. 마침내 니스 위생 당국이 악취를 이유로 시신을 시외로 옮기라고 명령하기에 이른다. 시신은 이전에 생선을 보관하던 검역소 자리로 옮겨진다.     
유령소동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한밤중에 무섭고 요사스러운 음악이 들린다거나, 관 주변에 악마가 서성이고 있다는 입방아가 수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조용했던 어촌이 소란에 휩싸인다. 시신은 교외에 있는 올리브오일 공장을 거쳐 폐가의 정원 구석에 치워지더니, 그것도 용납되지 못해, 배에 실려 여러 항구를 거치다가 간신히 고향 제노바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파내어서 파르마로 이송 매장된다. 오직 바이올린 하나를 들고 온 유럽을 돌아다녔던 파가니니. 그는 죽어서도 한곳에 머물지 못했으니. 왜 교회는 파가니니의 매장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가톨릭교회 계통의 잡지 <역사와 문학>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파가니니는 불신앙과 도덕적 퇴패를 대표하는 자로 악명이 높았다. 부활제에서는 그리스도교도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임종 예식조차 거부했다. 니스의 주교가 매장을 거부한 것은 이 때문. 이에 불복한 유족이 제노바 추기경에게 호소했지만, 추기경은 니스 주교의 처리를 지지했다.”
가톨릭교회가 파가니니를 마치 악마의 심부름꾼처럼 여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개의 교회는 음악을 쾌락의 도구 정도로 여겼다. 특히 악기연주를 껄끄러워했다. 그리스, 러시아정교와 같은 동방교회에서는 인간의 음성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악기라고 우기고 있어, 오늘날에도 악기연주를 금하고 있는 교회가 적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바흐와 같은 악성을 가리키며, 교회가 클래식 음악의 모태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터나, 바흐로 대표되는 독일 바로크 음악의 기반은 가톨릭교회로 부터 분열해서 음악을 통한 선교에 적극적이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파가니니의 눈에는 당시의 교회가 권력투쟁에 눈이 멀어 면죄부나 팔아먹는  타락한 조직 정도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과 재해피해자들을 위해 자선 연주회를 여러 차례 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교회에는 헌금하지 않았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교회 쪽에서는 갈고리로 긁어드리듯 거만의 돈을 벌어드리고 있는 파가니니가 괘씸하고 미웠을 수도 있었으리라.  
파가니니가 악마라고 불린 배경에는 그의 깡마른 체격이 풍기는 유별난 연주 스타일이나 교회와의 알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19세기라는 시대, 즉 악마가 일종의 붐을 일으키고 있었던 사회현상과도 관계가 있었다.
1830년대 파리에서는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악마가 개입하는 작품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때는 파가니니가 이탈리아에서 누린 인기를 업고 파리에 데뷔했을 시절과 겹친다. 소설과 연극, 그리고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악마이거나 악마와 관계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쉽게 말해본다면, 유럽에서 악마란 종교적인 존재로부터 오락성을 갖추고 통속화된 존재로 그려지게 된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파가니니의 초상>은 그렇다 치고라도 그에게 열광하는 대중의 눈에는 파가니니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악마로 비쳤을 지도 모른다.
한편 일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후원자도 전문적 기획인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연주장을 교섭하고 통상적인 입장료의 수배를 받아내면서도 전무후무한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는, 악마의 표상인들 어찌 마다했을까.
악마는 어느 시대에나 모양을 달리 해서 민중들 곁에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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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가니니는 악마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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