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0-1.jpg
 
천성적으로 우유부단하기만 했던 이삭은 자신은 물론 가족의 운명까지도 흐름에 맡기고 살았다. 짓궂은 랍비들 중에는 “어린 이삭을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아비가 칼로 찌르려한 끔찍한 경험을 했으니, 어찌 소극적인 성격이 형성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이들도 있다.
스스로 결단하거나 닥치는 일과 맞서려하지 않았던 이삭과는 다르게, 리브가는 결단할 줄 아는 성품이었다. 그것도 과감하게 이삭과 리브가가 부부로 맺어지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성품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소녀 리브가는 먼 나라에서 온 나그네(아브라함의 종)를 만나자 주저하지 않고 손님으로 맞는다. 길러온 물을 드리더니, 열 마리나 되는 낙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스스럼없이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 소개한다. 리브가는 나그네가 누구인지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인지 전혀 알 지 못했지만,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는 당찬 소녀였다.   
혼담이 무르익어 나그네를 따라 친정을 하직할 때도 그랬다.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저 애를 다만 며칠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있다가 떠나게 해주십시오.”하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리브가에게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하고 물어보지만, “예. 가겠습니다.”하고 잘라 말한다. 당돌하달 수밖에 없는 그녀의 결단에 그 누가 맞설 수 있었을까.
리브가와 이삭이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만 해도 그랬다. 먼 여행 끝에 들판 에서 한 사나이를 보게 되자,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지아비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다. 소극적으로 천막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이삭과는 정반대의 몸짓이 아닌가. 이후 둘의 삶에서 결단하고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리브가의 몫이었다.   
20년이나 아이를 가지지 못하다가,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한다.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우자,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입수한 정보는 비밀로 한 채 나름대로 도출한 결론을 따라 행동한다.  
그럼에도 리브가는 남편을 지배하려들거나 그 인격을 무시하려하지는 않는다. 사랑하고 존경했다. 남편 이삭이 올 곧고 신앙이 깊을 뿐 아니라, 그의 축복은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고 있었기에.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그렇고 그런 축복이 아니란 것을 충분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의 눈을 속이면서까지, 기어이 장자가 아닌 아우 야곱으로 하여금 “장자의 축복”을 받게 주선한 것도 나름대로는 마땅히 축복 받아야 할 자식이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서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에게는 남다른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주저 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설득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럼에도 교만하다거나 일을 그르치려 드는 파괴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는 즉시 무대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았다. 닥치는 순간순간마다 눈앞의 상황만이 아니라 미래에 전개될 일까지 날카롭게 통찰할 수 있었다. 이삭과는 달리, 리브가는 스스로 결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상황에서 성장했다. 주변에 신뢰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제멋대로 제 꿈에 취해 있는 사내들 틈에서는 혼자 사물의 진행과정을 살펴야만 했었고 필요한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신뢰할 만한 사람들 틈에서 자란 이삭은 달랐다. 귀족적인 어머니와 위엄을 갖춘 아버지의 보호 아래, 경험이 많은 성실한 종이 지탱이 되어 주었다. 이삭은 악의나 속임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러한 사정이 그의 삶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리브가가 자란 결함투성이의 세계와는 아주 달랐다. 리브가는 그와 같은 서로의 사정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었다.
리브가가 맏아들로 태어난 에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에서의 성격과 됨됨이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 친정 오라버니 라반을 통해서 축적된 자료를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지아비 이삭보다 더 깊이 두 아들의 특성을 판별할 줄 알았다.  
enoin34@nav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삭과 리브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