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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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제단을 말할 때, 약간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성만찬 식탁을 생각한다. 제단은 아브라함이 세웠다던 돌단도 야곱이 광야에서 베고 잤던 돌기둥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와인을 나누는 식탁이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뱀의 꼬임에 속아 열매를 따먹은 두 사람은 낙원에서 추방된다. 이것이 원죄라고 하지 않는가.  
먹는다는 행위는 양면성을 띤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활력을 제공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 포식과 편식 혹은 결식은 질병과 죽음으로 엉켜진다. 먹는다는 행위가 원죄를 통해서 잘못된 유산이 되어 버린 것을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다는 행위로 해서 그 원죄에서 풀려나게 한다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식사는 죽은 이를 애도하는 일과도 연계된다. 장례식에서는 회식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되고 있는 관습일 것이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이들이 죽은 자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함으로써 “먹을 수 있는 자”와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자”가 분명하게 구별된다. 동시에 죽은 자와의 관계에서는 회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구별된다. 더러는 반대로 원수였던 사이가 그 식사 자리에 참여함으로써 용서라는 과정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식탁을 더불어 한다는 것은 환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별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포용과 배제라는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용하게 되고, 이 작용으로 인하여 집단의 결속이 도모되는 것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그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장례식에서의 회식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한솥밥을 먹는 일로 해서 선택받은 혹은 용서받은 자가 그 끝을 마무리 짓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의 장례식을 몸소 집례 했다고 볼 수 있다.  참석한 사람은 12제자 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막달라 마리아와 어머니 마리아는 참석하지 못한다. “남녀 7세 부동석”의 룰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도 그렇게 엄중한 것이었을까.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할 때, “왜 그들과 식탁을 함께 하는 죄를 범하느냐‘는 바리세파의 힐난을 받았을 때, “의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자”이고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이다.”하고 받아쳤던 예수도 뛰어넘을 수 없는 철책이었을까. 아니면 최후의 만찬은 또 다른 차원이었을까. 그런 모양으로 철저하게 제한된 제자들과의 특별한 식탁을 통해서만 예수의 뜻이 확고한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라면 훗날 남성 중심의 교회가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이어령의 에세이 <예수님의 두 손, 바위와 보자기>에서 일부를 인용해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는 식탁에 올려놓은 예수님의 두 손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있고, 한 손은 손바닥을 펴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하는 ‘가위 바위 보’로 치자면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주먹과 보자기를 동시에 내민 셈입니다. 주먹은 바위와 같습니다. 손가락은 성문의 빗장처럼 굳게 안으로 잠겨 있어, 이미 외부의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주먹은 거부이며 도전이며 징벌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거기에 응고해버린 응고를 봅니다. 그러나 유다의 배신에 대해서 예수가 아주 주먹만을 쥐었던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한 손은 부드럽게 열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키우는 5월처럼 그 손은 펼쳐져 있습니다. 텅빈 하늘이거나 경계선 없는 바다입니다. 눈물을 받아들이고 아픔을 받아들이고... 증오나 악까지도 그 손바닥 위에서는 용해되어 버립니다. 빈 뜨락과도 같은 손바닥에서 우리는 너그러운 사랑을 봅니다.”     
골고다에서 예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한 것은 여인들이었다. 또 부활한 예수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거기 최후의 만찬에서 배제 되었던 막달라의 마리아였다. 만찬에 참석했던 유다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는커녕 자살하고 말았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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