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25
2019/10/25 10:58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아름다운 형제 우애(시 133:1-3)
1-1.jpg
 시편에는 119편처럼 176절에 달하는 긴 것도 있지만 117편처럼 단 두 절의 짧은 것도 있다. 133편은 3절에 불과하다. 117편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시이다. 그 주제는 형제들이 연합하여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단순한 서술이지만 그 이유를 2개로 비유로 설명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그 정확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시의 저자는 다윗이라고 했다.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탄하고 있다.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비유로 말하고 있다. 첫째는 머리에 부은 기름과 같다고 했고, 둘째는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헬몬의 이슬과 같다고 했다. 형제간의 불화는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인 가인과 아벨 사이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 그 시초이다. 가인과 아벨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지만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살인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 때문에, 더구나 형제지간에, 그것도 아주 계획적으로 일어났다. 우리 인간 역사에 있어서 분쟁은 형제간에 처음 벌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의 충동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살인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사람을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사람은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은 생명체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신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소유에 대하여 어떠한 이유로든지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 형제 우애에 대해서 언급하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시의 저자가 다윗이라고 전해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는 다윗이 형제들간의 우애에 대한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 추측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윗은 형제간에 싸우지 않고 연합하여 사는 것을 마음에 갈망하며 산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그의 누이 다말을 성폭행하고 매정하게 버리자, 다말의 친 오라비 압살롬이 2년 동안이나 복수의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그의 양털 깎는 날을 택하여 암논을 자기 집에 초청하고, 술을 먹인 후 그를 살해하여 누이를 대신한 복수를 감행했다. 온 집안이 박살이 났다. 다윗은 이 사건 후 날마다 울며 지냈다고 했다(삼하 13:34-36). 그러나 압살롬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여 난을 일으켰다. 백전백승의 대 장수인 아버지 다윗이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아들을 피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궁전을 떠나 피난을 가야 했다. 살인자, 아들의 광기를 피하여 도망가는 아버지의 심정이 참담했을 것이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그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궁전은 옛날의 궁전이 아니었다. 피 비린내 나는 자식들의 칼부림을 보고 겪으며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시편 133편은 다윗이 이러한 배경을 두고, 형제우애의 아름다운 모습을 동경하며 쓴 시가 아닌가 싶다.
이 시의 부제는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다. “실 하마알롯”()이라는 부제는 시편 120-134편에 연속적으로 붙여지고 있는데,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축제 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추측한다.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아가며 형제자매 친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제를 앞두고 모두 즐겁고 재미있게 동행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손을 멈추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길을 가며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때가 되면 함께 앉아서 싸가지 온 음식도 나누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시이다.
다윗은 이러한 광경을 되돌아보며,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모습이 마치 제사장 아론의 머리로부터 수염을 타고 내려와 옷깃을 적시는 값진 기름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 모습은 제사장이 다른 사람, 곧 다른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는 위임식처럼 양식은 같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바로 제사장 자신, 아론이다. 레위기 8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아론을 제사장으로 기름붓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론의 몸을 씻기고, 우림과 둠밈을 담은 가슴패와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온갖 화려한 제사장의 제복을 입히고, 금을 입힌 거룩한 판을 붙인 관, 곧 모자를 씌우고, “또 붓는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그를 거룩하게 하였다.”(12)고 했다. 거룩하다는 말은 깨끗하고 구별되다는 말이다. 빛나고 위엄이 있고, 순결하여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에게 제사장을 세우는 날은 참으로 복되고,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래서 한글 성경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가”라고 번역했는데, “Hinneh mah-tov wumah na‘yim” ()은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How beautiful and pleasant!) 혹은 “얼마나 복되고 사랑스러운가!”(How blessed and lovely!)라고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아론의 위임식이 하나님께서 명하셔서 모세가 행한 일이라는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생기고 부부간에 또한 형제간에 장벽이 생기고 서로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을 세우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형제지간에 피를 흘린 자들을 위한 중보자가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속죄의 길이 열리고 형제들 사이에 평화의 싹이 트게 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 것이다. 만일에 아론의 제사장직이 모든 향제들 사이의 분쟁을 그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죄가 온전한 속죄를 이루는 것이었다면 다윗은 이러한 소망을 가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비록 지금은 자식들 사이에 생긴 분쟁과 살상을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장을 세우셔서 모든 인생들이 형제들과 연합하여 함께 동거하는 세상을 이루실 것을 마음에 그리고 바라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세상이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동경하며 죽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소망과 비전이 이루어졌다. 제사장 아론이 이루지 못한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온전한 속죄와 중보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친히 거룩한 속죄의 제물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와 중보를 이루게 하셨디. 아론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딤전 2:5)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인이 흘리게 한 피, 암논과 압살롬이 흘리게 한 피를 씻으시고, 형제들이 화해하고 연합하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한 성령으로 우리를 띠띠우시고 한데 묶어 한 하나님의 자녀, 한 형제가 되게 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 형제로서 연합하게 하셨디.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러나 그 때에 멀리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다. 자신의 육체 안에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된 것을 제거하신 분이시며 ...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는 것이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3-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게 하시고 세례를 통하여 이를 인치셨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셨다. 서로 연합된 한 몸, 한 형제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아론의 머리로부터 수염으로, 그리고 옷깃으로 기름이 넘쳐흐르듯이 성령의 역사가 넘치는 형제, 자매의 연합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서로 하나되는 아름답고 즐거운 사귐을 갖게 된 것이다.
다윗은 형제간의 우애를 아론의 머리로부터 흘러내리는 기름에 비유할 뿐만 아니라 시온의 산들 위에 내리는 이슬로 비유하고 있다. 예루살렘에는 시온산, 성전산, 감람산 등 세 개의 산이 있는데, 시온은 시편에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불리우고,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시온은 유다 지역에 있다. 유다 지역은 지중해 지역처럼 비옥한 땅이 아니다. 지중해에 접해있는 해안 지역은 비가 자구 오기 때문에 비옥하여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지만 중앙산맥 동쪽, 유다지역은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없어 메마른 광야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열대지방 기후라서 낮에는 사막처럼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지만 밤에는 기온이 낮다. 그래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해서 이슬이 흠뻑 내린다. 그래서 유다지역에서는 포도나 올리브, 바나나와 같은 열대성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아도 이슬만으로도 과일이 풍성하게 생산된다. 참으로 신비한 나라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 산들에 내림과 같다는 말은 마치 이슬이 헐몬 산에서 내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헐몬 산은 높아서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름에도 스키를 타러 간다. 헐몬 산에서 녹아내리는 물은 요단 강을 이루고 이 강물이 갈릴리 호수와 사해로 흘러내려 간다. 이스라엘의 젖줄이다. 갈릴리 지역의 풍성한 농산물은 다 갈릴리를 지역을 관통하는 요단 물 먹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마치 할몬 산의 물이 갈릴리에 온갖 풍성한 농산물을 생산해내듯이, 시온의 이슬도 유다 지역에 온갖 풍성한 과일을 생산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다윗은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동거하는 이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부요한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동거하는 모습이 부족함이 없이 부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 성도들이 연합하여 함께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말씀이 있고,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나눔이 있다.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우정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나눈다. 물건을 나누고, 음식을 나눈다. 성도들 사이의 이러한 풍성함을 한번 맛본 사람은 다른 곳에 갈 수가 없다. 떠날 수가 없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