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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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꿈속에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이 찬송을 부르다가 깨었습니다. 꿈에 불렀던 것을 깬 후에도 계속 이어 마지막까지 마무리했습니다. 꿈에서 생시로 이어지는 이 기가 막힌 찬송가가 하루를 벅차오르는 감동 속에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 가사는, 19491월에 편찬 된 합동찬송가 이래(이전 찬송가는 잘 모르겠음) 지금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새찬송가까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19491월 육이오 전에 편찬 된, 합동찬송가에 수록 된 가사입니다.

 

1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후렴; 주여 나를 돌아 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노한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2 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이기고, 풍랑조차 복종하는 내 주 앞에 비나니

3 사망 길에 빠진 몸이 캄캄한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들으소서 내주여

 

가사를 만든 사람과 곡을 만든 사람이 찬송가에는 모두 무명으로 되어 있지만, 가사 속에는 작사가의 심정이 아마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절절한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이 가사는 또한 우리의 형편이기도 합니다.

 

1. 작사가는 시험의 바다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헤엄칠 자신이 있었습니다.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과는 다릅니다. 폭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거기에다 방해하는 세력들이 집채만큼 밀려옵니다.

 

그 시험이 자신 안의 유혹이든, 아니면 시련이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환경입니다. 더 이상 헤쳐 나갈 수 없는 지경, 자기 힘이 모두 소진 된 상황,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필사적으로 주님을 부릅니다.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2. 말씀으로나 양심으로나 상식으로나 모든 부분에서 잘 못 된 일인데도, 부당한 권세 아래서, 중우정치 아래서 정의가 야합과 다수에 의해 묻히고 소수가 힘을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신앙인들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기 때문입니다(2:10).

 

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 이기고 풍랑조차 복종하는 내 주 앞에 비나니.

주여 나를 돌아 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3. 사울의 창을 피하여 도망 나온 다윗이 친구 요나단을 만나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요나단이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삼상20:3)라고 요나단에게 말합니다.

사망 길에 빠진 몸이 캄캄한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들으소서. 내 주여

주여 나를 돌아 보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후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23:4).

 

모든 찬송이 주님을 높이는 찬송이지만 굳이 나눈다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 둘째는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이 찬송가는 두 번째 해당 됩니다. 이 찬송을 부름으로써 우린 하나님을 높임과 동시에 기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깊은 시험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주님께 아뢰십시오. 너무 기가 막혀 무엇을 아뢰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까? 이 찬송가로 대신 부르십시오. 한 번 부르고 두 번 부르고 세 번 부르면 마음이 진정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임재입니다.

 

그 때부터 구체적으로 아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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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마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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