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인간은 생물계의 분류상 동물계에 속한다. 그런데 인간이 같은 동물계에 속하는 여타 짐승과 다른 점은 ‘도덕심’이라는 것을 가졌다는 점이다. 인류사회의 규범은 이 도덕심에서 나온다. 도덕심은 양심에 바탕하고,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는다. 그래서 도덕심이 부족한 사람을 짐승같은 놈이라고 한다. 사자성어의 인면수심(人面獸心)도 그런 인간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러면 양심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장로교 정치 원리 제1조는 양심의 자유를 제1원리로 삼는다.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양심은 곧 천부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신앙은 이 양심의 자유에 바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양심에 바탕한 도덕심을 일깨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의 분열은 양심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소위 ‘조국사태’라고 불려온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로 나누이는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검찰에 의해 소상히 드러난 조씨 집안의 불법성을 권력주변의 어용지식인들과 여당인사들이 양심을 외면하고 일방적 옹호가 만들어 낸 분열 현상이 지금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 곳곳에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종종 있다. 한 줌도 안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증언을 하여 이웃을 해친다. 양심을 거스리니 자연히 도덕심이 타락하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심은 사람에 따라 수정처럼 맑은 양심이 있고, 발바닥처럼 무딘 양심도 있다. 수정처럼 맑은 양심은 세미한 먼지에도 반응하지만, 발바닥처럼 무딘 양심은 왠만한 모래 한 알쯤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우리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자주 설교해야 한다. 사회적 도덕성이 곧 현대사회의 경쟁력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경제도, 정치도, 종교도 제 몫을 감당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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