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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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2월 3일자 본란에서 이미 다루었던 제목. 미루어 두었던 자료들을 간추려본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은 러시아 혁명 후에 곧 ‘금서’가 된다. ‘숭고한 사명을 위해서 투쟁한 혁명 운동가들을 비방한’ 작품으로 판정된 것이다. 혁명의 주역이었던 고리키는 이렇게 단죄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은 1870년대의 혁명운동을 중상하기 위해서 꾸며진 무수한 시도들 중에서도 ‘가장 지능적이고도 가장 악질적인 작품’ “이라고. 고리키를 흥분케 한 것은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를 비하한 작가의 표현들이었다.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는 작품의 주역이 아니다. 첫머리에 얼굴을 내밀어 무대의 막을 열어주는 인물일 뿐이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크게 작용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베르호벤스키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라노프스키(1813-1855)를 모델로 삼았다. 그는 1840년대 러시아 민중의 주목을 받던 ‘서구파’의 스타 지식인들의 리더였다. 많은 지식인들이 ‘순수한 인품을 지닌 자유주의자’라 평가했고,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악령>의 ‘창작노트’에서 그를 높이 평가했었다. “그라노프스키는 많은 장점을 구비한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서구파’의 초상”이라고.  
그러나 그를 모델로 하고 있는 작품속의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교수는 형편없는 속물이 된다. 두서없이 작가의 생각들을 간추려 본다.
“그에게는 소위 서구적 시민이라는 자신의 아름다운 포즈를 연기하면서 쾌감에 젖어드는 버릇이 있었다. 스테판 트로피모비치는 러시아 시민의 자유를 확립하기 위하여 투쟁하겠노라는 깃발을 들고 위험을 무릅쓰는 지식인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은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노라  그냥 서있기에도 지친 나머지 줄곧 드러눕곤 했다. 그렇게 누운 자세로도 남을 꾸짖고 견책하는 시늉만은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한 지방 도시에서도 그랬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않으면서 다만 아름다운 이상에 취해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감동해서 우쭐대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렇게 취한 채로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말상이긴 해도 아주 현실적인 여지주 스타브로기나의 ‘페트’ 노릇에 이골이 나서 우리의 스테판 트로모비치는 스물 두 해 동안이나 그런 포즈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가는 서구를 동경하는 가짜 이상주의자들을 야유하고자 했다.   
<악령>에서 등장하고 있는 새 세대 젊은이들은 어린이였을 때에, ‘흉내만 내고 있는’ 이상주의자의 손에서 육성되었다고 그린다. 1940년대의 이상주의자들이 새로운 세대 즉 1860년에서 1870년대에서 전통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자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승 스테판 트로피모비치에게서 제대로 된 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가 없었다. 그는 가르치는 대상이 어린이 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보여주기에만 몰두했다. 어떻게 보면 순진했다. 아름다운 이상을 동경한 나머지 무의식중에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독으로 채우고 있었다. 자장가처럼 그의 말을 듣고 자란 그들은 그의 꿈에 갇혀버린 것이다.”
스테판 트로피모비치는 죽기 전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악귀들은 자진해서 돼지 속에 던져 달라고 애원하고 나선 것을. 아니 어쩌면 벌서 들어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나는 그들 중의 하나다. 나의 아들 페트류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도. 어쩌면 나는 그 첫 번째 두목인지도 모른다.”(참조: 누가복음서 8장 33절)
도스토옙스키가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악령>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오. 그것은 사상적 바탕에서의 기대입니다. 머리나 마음에서 쌓이고 쌓인 그 무엇이 나를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되어도 좋습니다. 하여튼 나는 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1870년 3월 24일)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서구문화를 이상으로 떠받드는 러시아지식인들의 동경이 어린이들의 심성을 상하게 했고, 러시아의 현실에 뿌리를 둔 사고를 육성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자성을 포함한 비판을 시도했던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선한 사람인척하는 이상주의자가 미숙하고 순진한 아이들을 선동해서 ‘악귀’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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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에 등장하는 스테판 베르호벤스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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