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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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을 세 번씩이나 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비핵화는 주춤하거나 중단된 상태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한에 대한 제재는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강화 되는 형국을 보인다. 대개의 폭력은 힘 있는 강자로부터 시작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쟁의 참상이고 독재와 독점 독단의 3독 형상이며, 이러한 것을 통해서 힘없는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며 죽이는 살인은 악독 행위이다.
살인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배반하는 행위이다. 창세기에서의 가인의 아벨에 대한 행위는 시기와 질투 분노의 결과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사정포를 시험하는 것은 자국의 생존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외부에 존재의 근거를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은 적으로 대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후 처리 결과로 식민의 영향과 강대국들의 점령으로 분단된 것이다. 분단의 결과는 좌우 이념으로 인한 숱한 민중들의 죽음과 이유 없는 극단의 갈등을 낳았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과 현제 자매들끼리의 오해와 상처는 끝이 없고 조상이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나서 낮설고 물설은 타향 객지를 살아야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서로가 총을 가슴에 겨누고 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민족세계전쟁(6.25)의 참상을 겪어야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같은 가족과 형제들이 이념과 강대국의 점령 하에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최악의 역사를 써야했다.
전쟁이 없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불평등이 사라지고 진정한 민주와 인간화의 완성과 성취를 이루는 자유와 평화, 생명과 정의가 춤을 추어야 한다. 남북의 교류가 보류되고 답답함이 커져간다. 이런 사간들이 너무도 오래되고 너무나도 긴 시간이 흘러갔다. 중재자, 협상자로 나서는 것도 북미 회담도 진전의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조금은 우려스러운 기운이 돌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평창 이전의 상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조성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의 노래는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남북의 민중들에게 제안한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대안의 방법이다. 정상들이 할 수 없는 작은 마을 공동체들이 자유 왕래를 하면 어떨까? 아니면 오래 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 하고 이산가족들이 사는 마을부터 서로 자유 왕래를 하도록 허락해 주면 어떤가? 서로가 만나고 생필품들과 먹거리들을 주고받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만남을 중단하지 않는 최소한 인간들의 삶을 통하여 사는 것이 이것이다. 라는 평화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허용하면 어떨까? 다시 말하면 만남이 통일이다. 만남이 막혀 버린 것은 지옥이다. 사탄은 만남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질투하고 시기한다.
한반도의 시계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제 그만 미국의 질투나 중국의 시기나 일본의 장난질은 그만두라 러시아의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용기를 내야할 것은 남북 당사자이다. 4대 강국들의 눈치를 살피는 한반도의 미래를 설정하지 마라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할 수도 있다. 당국과 관료들에게만 맡기는 통일의 길은 너무나 무겁고 벽이 두껍다. 남북이 문을 열어가야 한다. 거대한 강국 미국의 간교한 지배와 패권의 전략을 과감히 깨고 나가야 한다. 트럼프 같은 장사꾼이나 합리적이며 깊은 전략을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흉함을 무너뜨려야 한다. 미국을 등에 업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예속과 종속의 식민 근성을 버리지 않고는 한반도의 미래는 예측할 길이 없다. 우리 스스로의 자주 독립을 결행하지 않고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술에 취해서 갈피를 못 잡고 식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슬픈 역사의 그늘을 탈출하지 못할 것이다.
평화는 누가 만들어서 먹여 주는 밥이 아니다. 우리의 통일은 누가 만들어 주는 기쁨이 나이다.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겪어 온 고통의 눈물이요 고난의 아픔이며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수난의 시간이 존재할 수도 있다.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모른다. 미국을 향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길인지 아니면 남북과 북미의 관계를 중단하고 스스로 자립 자족의 경제 건설을 한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진정한 물꼬가 터지기를 기도한다. 분단의 십자가를 더 지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민족의 자존감을 허약하게 한다. 인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한반도의 시계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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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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