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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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17:24-27).

 

성전세는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생명의 속전으로서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성전 유지와 관리를 위하여 일 년에 반 세겔씩 바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받으러 다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세금을 내시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일이니 베드로는 당연히 예수님께 여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저하지 않고 내신다.”하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상 임금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는지 묻습니다. 아들에게인지 또는 타인에게인지 묻습니다. 그제야 베드로는 세관에게 자신이 한 대답이 잘 못인 줄 깨닫습니다.

 

베드로의 태도는 오늘 우리 자신의 태도와 같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면 주님께 여쭙지 아니하고, 기도드리지 아니하고 우리 자신이 먼저 나가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시몬을 향하여 이 전 약속했던(1:42),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본문에는 베드로라고 부르시지 않고 다시 시몬이라고 하십니다.

 

너 여전히 옛 사람 시몬을 써 먹는 구나.”는 질책입니다. 우리에게도 옛사람 있고 거듭난 후에 새로 받은 영적인 이름이 있습니다. 옛 사람을 장사지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신다.”라고 대답하는 육신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시행착오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그제야 주님으로부터 강한 책망을 듣습니다.

 

그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되는데, 너 또 네가 먼저 나갔구나......” 순간은 옳아보여도, 순간은 좋아보여도, 상식적으로 생각 되어도, 기발한 일 같아도 주님께 기도로 여쭙지 아니하면 잘 못 되기 일쑤입니다.

시몬이 먼저 나갔던 베드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가지 않아도 될 바다를 가야 했으며, 고기를 낚지 않아도 되는데 낚시질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럭비공처럼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육신, 이거 제어 못하면 사망을 체험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8:6).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주님께 버림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주님보다 자신을 앞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 같은 사람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16:8) 말씀처럼 자신보다 주님을 항상 앞에 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자신보다 주님을 항상 앞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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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내 앞에 계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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