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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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영국 레스터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소식이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리처드 3세’로 쏠리게 했다. 한 해 앞서 연구팀이 그곳 지하주차장에서 발굴한 유골은 리처드 3세의 것이 틀림없다는 소식 말이다. 척추측만 증상이 있는 등뼈에 금속 화살이 박혀 있었고 두개골에는 금이 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럴 것이라 짐작 했었던 터에, DNA감정 결과 리처드 3세가 틀림없다고 보도했으니.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은 이름과는 달리 너무나 추잡하고 잔인한 전투였다. 뿌리는 한 왕조였으나 왕관을 두고 서로 원수가 된 랭커스터가와 요크가가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 문장을 내걸고 다투었기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투어 힘 있는 귀족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여 왕관을 차지하려는 쟁투. 한 동안은 랭커스터가에게 왕관을 빼앗긴 시절이 있긴 했어도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꽤 긴 세월을 군림했고, 병사하자 아우 리처드가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요크가 편이 패하면서 장미전쟁은 막을 내린다. 발가벗긴 리처드 3세의 시신은 레스터로 옮겨져 민중의 눈요깃거리가 된 다음, 프란치스코 교회에 묻혔다고 전해졌지만, 얼마 후 교회가 허물어지면서 그의 시신은 깜깜이가 된 터였다. 21세기가 되어서야 레스터 대학 연구팀이 나서 고지도를 참조하여 주차장을 파보았더니 유별난 유골을 발견하게 된 것이란다.
장미전쟁과 리처드 3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셰익스피어의 붓이 큰 몫을 거들었다. 불과 두 해 동안 왕 노릇한 위인의 유골을 찾았다는 소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문호 셰익스피어가 그를 소재로 쓴 희곡 <리처드 3세>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막이 오르면 꼽추로 분장한 주인공 리처드 3세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객기를 뿜는다. “길은 오직 하나 한껏 악당이 되어 주겠다!”며. 막이 닫힐 때까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장면들.  형 클라렌스를 술통에 담가 죽이는가 하면, 부려먹던 가신들은 죽음으로 내몰고, 어미는 간통녀로 내몬다. 놀라운 것은 이 악한에게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따르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손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임을 당한 여인이 침을 뱉다가도 결국에는 그의 청혼에 굴복하고 만다. 훗날 이 연인마저 독살되지만.  
아우 리처드의 됨됨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형 에드워드 4세는 뒤를 이을 황태자를 위해 리처드를 후견인으로 지목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리처드는 장조카 에드워드 5세를 왕위에 앉히겠노라 약속하고는 대관식까지 런던탑에 있으라고 명한다. 에드워드의 아우 리처드도 함께. 왕자들의 저항은 전혀 먹혀들 수 없었다. 리처드 3세는 읊는다. “어려서 총명하면 장수할 수 없는 법” “봄이 이르면 여름이 짧은 법.” 목숨을 잃은 열세 살 배기와 열한 살 배기 두 왕자는  암매장된다. 스스로 왕관을 쓴 리처드 3세, “형의 자식들은 사생아여서 왕위계승권이 없었다.”며 의회의 승인을 받아낸다. 질녀 엘리자베스를 새 왕비로 맞겠다고 형의 미망인을 설득한다. 그러나 결국 보즈워스 전투의 승리자 헨리 7세의 왕비가 된다. 리처드에게 있어 “양심이란 말 따위는 비겁한 자가 쓰는 것”이었다.   
 <리처드 3세>를 즐기는 팬들이 즐겨 암송하고 있는 명대사 “말을 달라! 말을! 나의 왕국을 줄 터이니 말을 달라!”(A horse!, A horse! My Kingdom for ahorse)”는 연기자가 가장 신나하는 대목. 드라마의 막장 ‘전란의 장’에 등장한다. “주사위 한 판에 목숨을 건 내가 아닌가. 패가 나올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노라. 리치먼드(훗날의 헨리 7세)패거리가 여섯이나 된다지만, 벌써 다섯은 죽였다.”하는 대사 다음에 뱉어내는 명대사. 그리고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한 동안 숨을 죽이던 관중이 열광하고 박수 친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이 있어 온지 오래다. 토머스 무어가 쓴 전기를 자료로 삼았다는 데도 말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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