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27
2019/12/23 15: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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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기, 만민들의 깃발(사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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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는 그가 살던 세상을 “사람들이 그 땅을 바라보면 어둠과 고통뿐이며 빛도 그 구름으로 인해 어두워 질 것이다.”(사 5:30)라고 기술하고 있다. 전운이 온통 팔레스타인에 뒤덮고 있어서 왕 아하스를 비롯하며 온 유다 백성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어 그를 안심시키시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안심시키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믿으라고 명하신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처녀가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두고 일컫는 이름이다.  그리고 이사야 11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처녀가 낳을 아이가 어떤 분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알려주신다. 이스라엘에게는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안심을 시키고 격려를 하신 것이다.
본문은 11:1-5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아기의 정체와 그의 할 일, 6-10절은 그 아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새 세상의 모습, 11-16절은 언약의 하나님을 배반한 남북의 이스라엘은 동족끼리 싸우다가 결국 망하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 서로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이루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절은 10절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것을 수미상관법을 사용하여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싹을 강조하고 특히 1절을 더 부연,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사야는 여기서 처녀가 낳을 아들, 임마누엘을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그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라는 비유로 말씀하신다(사 11:10).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이새의 뿌리라함은 다윗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다윗에게 그의 왕조가 영원토록 이어가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삼하 7장). 다윗의 후손 가운데 임마누엘을 주신다는 것이다. 후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농부에, 자신을 포도나무에, 제자들을 가지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을 보면(요 15장) 여기서 말하는 나무나 뿌리에 난 싹은 분명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을 가리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 임마누엘은 어떤 분이신가?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어떤 영인가? 지혜와 분별의 영, 권면과 능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했다.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셔서 공의와 공평과 성실로 세상을 다스리고 재판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다스리고 재판하는 지도자, 왕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 전략과 전력, 지식과 겸손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두 번째의 권면과 능력이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하다. “권면”이라는 말을 개역성경에서는 “모사”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국어의 모사는 간신들이나 반역자들이 꾸미는 음모를 의미하는 말같이 그 용도가 본문에 적절하지 않다. 히브리어 “에차”라는 말은 충고(advice), 상담(counsel), 계획(plan), 목적(purpose)이라는 뜻이 있다. “에차” 다음에  “그볼라”, 곧 “힘”(power), 그 파생어로 군대의 “장수”(기볼)라는 말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이 말은 주로 전쟁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전쟁에서 작전을 짜고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기획, 곧 전략을 의미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힘, 곧 전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백성을 위하여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이다.  따라서 한 아기 위에 함께 하는 영은 작전과 전력을 가진 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은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의 왕 베가가 아무리 좋은 작전을 짜고,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전투력을 동원하여 유다왕 아하스를 침공한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계획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전략과 전력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전략은 꼭 전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 세상의 역사를 기획하시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섭리하시며, 그 뜻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우리 인생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세고 계시는 분이다. 그래서 이새의 뿌리에서 난 그분에게 전략과 전력, 창조와 섭리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 인생을 기획하시고 인도하시는(control) 분이라는 것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아기, 임마누엘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 전략과 전력, 그리고 지식과 겸손의 영이 함께 하시는 분이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왕이었다. 시편 1편에 나오는 말처럼 “오만한 자”이다. 지식이 없이 오만한 왕은 자기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한다.
 그런데 이사야 9장 6절에는 이 한 아기를 가리켜 “그 어깨 위에 통치권이 있으며, 그 이름은 위대한 상담자(전략가 혹은 섭리자)라, 전능한 하나님이시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새의 뿌리에서 낳은 아이가 바로 하나님이며, 아버지이시고, 평강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임마누엘 한 아기로 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실 것이다.      
그러면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왕, 곧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9절에 보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지식이 충만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마치 에덴동산과 같다. 이리와 어린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젊은 사자가 함께 살고 누우며, 어린 아이가 이들을 이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으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이 말씀은 꼭 이대로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비유이다. 여기에 나열된 짐승들은 다 만나면 잡아먹어야 하고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적대감을 가진 약육강식의 원수들이다. 살기 위해서 먹고, 먹히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지만 먹히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임마누엘이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생물들이 그들 사이에 있는 적대감을 다 버리고 한데 어울려 산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싸우지 않고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때 어린 아이가 이 야생 포식자들과 이들의 먹이감과 같은 존재들을 이끈다고 했다(6). 어린 아이가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10절에는 이때에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싹, 곧 임마누엘이 만민들의 깃발이 되고, 열방들이 그 깃발을 보고 찾아와서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는 곧 “열방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며 그곳이 영화로울 것이라고 했다. 전장터에서 병사들은 앞에 나가는 대장의 깃발을 보고 따라간다. 임마누엘이 깃발이 되어 그를 표적 삼아 따르며, 그가 있는 곳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아기, 임마누엘은 하나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의 자연 만물과 세상에서 억압받고 상처받은 인생들에게 안식과 평화로 인도하는 길 안내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특히 이 한 아기가 깃발로 선다는 모습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어가는 인생들을 살리기 위하여 놋뱀을 든 것 같이 자신도 십자가에 들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만민들의 깃발”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 만민들이 전략과 전력의 영이신 예수께서 무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 왕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깃발아래 모여들 때, 이 세상에 참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야 말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평화를 원하는 자, 안식을 찾는 자, 말씀을 구하는 자들이 열방에서 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 바로 그 깃발아래 모여들 때, 이 세상은 참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임마누엘이 열방의 깃발로 서는 날 세상 사람들은 이 깃발을 향하여 모여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모으실 것이다. 특히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하고 동족상쟁의 남북전쟁을 일삼다가 다같이 멸망하여, 세상의 떠돌이 신세가 된 이스라엘 백성도 임마누엘 깃발아래 모여 지난날의 모든 적대감과 질투심과 증오심을 버리고, 다시 출애굽 때와 같이 여호와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남북 이스라엘이 이제는 임마누엘 안에서 서로 화해하고 화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통일이 “임마누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하스는 이것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시리아에 찾아가 조공을 바치고 스스로 분봉왕이 되어 원군을 청함으로 잠시 숨을 쉴 수 있었지만 유다는 바로 그 아시리아의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에게 망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은 처녀가 어린 아이를 잉태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굳게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이사야는 한아기, 임마누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 위에 통치권이 있으며, 그 이름은 위대한 상담자(섭리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그의 통치력은 확대되고, 평화는 끝이 없을 것이며,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할 것이니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사 9:6-7).
전능하신 하나님, 평화의 왕이 세우시는 임마누엘의 나라,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시고야 말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정세와 남북한의 대치 상황,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총체적인 불안정이 아하스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두렵게 한다. 온 세상이 온통 아하스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어둠과 불안으로 싸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 있다. 하나님은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control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고 멸망시키고, 우리 인생을 심판하고 죄와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구원 사업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고, 멸망에 처한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분이시다. 궁극적으로 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과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섭리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그분이 바로 한 아기, 임마누엘이다. 그분이 우리의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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