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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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 항상 유념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또 다른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좋은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 어이없는 불평과 비난을 쏟아내기 만하는 너무나 비열함을 고상하게 포장하면서 숭고한 언어로 덧칠하여 불편한 목소리를 발하는 것도 흔히들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불편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다. 그것을 여론(輿論)이라고도 하고 민심(民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특히 정치인은 남의 말에 귀 기우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는 여론과 민심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고, 무리한 반발이나 분노를 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말하고 외쳐댄다고 하여도 듣지 않고 외면하면서 신뢰와 공감이 전혀 없는 자기들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밀고 나간다면 불행한 일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말은 정신의 호흡이다”라고 했지만, 한 마디의 말이야 말로 모든 행위의 그림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며, 이름이며, 사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마치 촉수 잃은 곤충처럼 정치와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문제에서 윤리와 원칙이 무너지고, 맘대로 고치고, 봐주면서 사법체계가 엉망이 되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도 평등, 공정, 정의를 앞세우며 고집하는 것은 그들만의 언어적 유희(遊戱)에 불과하다. 순수해야 하는 인간양심의 탑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는 침묵이 금(金)이고 은혜라는 비굴함을 보이는 자들이 허다하다.
정권의 핵심부에 앉은 자들은 우리끼리는 잘못이 있고 부도덕할 지라도 한없이 관대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으로 집단 체면에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으로 일방적 독주를 하면서 국민적인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소위 철학적인 고민과 법적인 고민을 거듭한다 해도 공동체는 분열하고 있으며, 앞뒤가 꽉 막혀버린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권력 본색의 정치상황을 공정하고 품위 있고 관대함으로 풀어 나가는 지도력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깨끗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해야 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워 국민을 위한다는 이중 잣대로 신선한 마당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의혹과 모순으로 불합리를 안고 있는 이 국가적 난국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 11:17).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바로 진리와 정의를 위한 분노이다. 분노해야 할 때에 주저하고 단념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지켜 나가지 못하는 불의가 정당성을 위해 질주하고 있다면, 당연히 자신의 행복과 미래의 길을 열기 위해 분노해야 한다. 아무리 목 놓아 부르짖고 외쳐 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는다면 정의와 도리(道理)가 살아나는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거룩한 분노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분노는 새로운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변영로 시인의 시 ‘논개’에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는 구절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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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말하고, 분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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