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과 부인하는 것’
2020/02/03 14: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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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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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10:32-33).

 

오늘날엔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던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하거나 심지어 개인끼리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시기심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이 소경되었던 자에게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답변이 자신들의 원하는 것이 아니었던지 바리새인들은 다시 그의 부모에게 묻습니다.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러자 그 부모는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라고 하며 직답을 회피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라.”(9:17-22). 출교란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유대인의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임을 용감하게 고백했던 그의 아들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9:34). 얼마나 두려웠으면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겠습니까?

 

그만큼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슬람권 나라에서나 공산권에서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신앙의 자유가 있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담대히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주님이 부끄러워서 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기독교 이미지 때문에 말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시인한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1:16). 입으로 시인하지만 행위로 부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행위로 부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 말씀처럼 가증한 행동을 하고, 복종하지 아니하며, 선한 일을 저버리는 행동입니다. 가증한 행동이란 하나님이 밉게 여기는 행동입니다.

 

7:21은 말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하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행위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입만 크리스천이지 손과 발은 크리스천이 아닌 것입니다. 행위로 시인하는 증거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벧후2:1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멸망케 할 이단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종, 더 강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노예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행위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신앙인들이 입으로는 예수님을 시인하고 있지만 정말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의 뜻이 아닌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니, 살아가려는 뜻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행위로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할 뿐 아니라 행위로도 시인해야 합니다.

 

요일2: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기름부음은 성령입니다.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예수님을 시인하는 행동입니다. 반대로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느낌, 성령의 감각은 우리 안에서 평안으로 역사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할 때 양심이 편안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할 때 양심이 불안합니다. 이처럼 성경 안에서 양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행동입니다(3:6). 그것은 마치 요셉이 형님들에 의하여 애굽에 팔려나간 사건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인정하고(45:8), 다윗이 시므이가 그에게 한 저주를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받은 것과 같습니다(삼하16:11). 이와 같이 일어나는 사건들 모두를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인정하는 것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시인하는 행동입니다.

 

신자들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인정하면 사람과 일과 사물을 대할 때 태도가 달라집니다. 드러나는 환경이 아니라 배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읽으려고 애를 씁니다.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습니다(고전8: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되면 하나님나라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은 입으로 시인하고, 행위로 시인하며, 양심을 통하여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의식하고,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인정하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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