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바바 144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131
2020/02/14 17: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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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시편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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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와 힘이시니

  환난 때에 만날 큰 도움이시리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떨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병균이 전 세계 수많은 생명을 사냥질 하고 다닌다. 모든 생명 활동이 다 정지 상태이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 안전지대로 피난을 가서 걱정없이 활동하며 살고 싶은 생각을 안 해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어디 안전지대가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과연 피난처가 있는 것는 것인가?
다행히 성경에 보니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치고 있다. 본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와 힘이시니, 환난 때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7절과 11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신다.”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시작과 끝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중간에 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시는 “셀라”라는 말이 3,6,11절에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본래적인 의미는 “높이다”(to lift up)는 의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음을 이곳에서 높이 올려라 (to higher pitch), 혹은 음성의 변화 (change of voice), 혹은 기악곡의 삽입을 위하여 성악은 멈추라. 혹은 “영원히”(forever)라는 의미라고 다양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주제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하여 문단을 나눌 때 사용하기도 한다. 본 시에서는 분명 자연적인 재해와  전쟁의 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오로지 여호와만이 그 백성들의 피난처이시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찬양하는 시이다.
때라서 이 시의 전반부는 자연의 재앙을 다스리는 하나님(2-7)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1절에  “환난의 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그래서 땅과 산이 바다에 깊이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소리치고, 거품을 내고, 거센 파도에 산이 요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의 말로 하자면 밤중에 지진으로 말미암은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민족들이 소란하고, 왕국들이 요동한다.
그러나 바닷물이 밀려와 산을 덮치고, 땅이 흔들리는 이 상황 속에서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처소는 요동하지 않는다. 지극히 거룩하신 분은 물론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읍으로 흐르는 강은 오히려 거룩한 성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성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강들이 요동치지 못하고 오히려 졸졸 흐르는 개울물처럼 흘러 하나님의 처소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지진이나 바닷물도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알고 그 앞에서는 잠잠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새벽에 일어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성읍이 어디인가?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거처를 산에 두신다. 성경에 시내 산, 호렙산, 시온 산 등을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시편 48편에 보면 “북방의 시온 산은 높고 아름다우며 온 세상의 기쁨이 되니 위대한 왕의 성이다. 하나님께서 그 성의 궁전에 계시니 자신을 피난처로 알리셨다.” (48:2-3)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 위에 계시고,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발하시는 소리는 어떤 자연의 소리보다 크시고, 자연의 힘보다 더 세고 강하시다. 감히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처를 어떤 피조물이라도 넘볼 수 없다.
자연 재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우리가 직접 체함을 해보지 않아 적나라하게 그 파괴력을 실감할 수 없지만 사진이나 뉴스 기자들의 보도를 보는 광경은 참으로 무섭고 참담하다. 일본의 쓰나미 현상이나, 미국의 칼리포니아와 호주의 산불, 그리고 알프스 산에서 트렉킹하던 사람을 삼킨 눈사태 등은 공포 그 자체이다.  
요사이 중국 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마비시켜 가고 있다. 나라들이 문을 닫고, 모든 집, 학교, 공공건물, 상점, 백화점,  심지어 병원까지 문을 닫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염병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자들이 한 달여 만에 4만명, 사망자가 1,000명을 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당하는 대재앙인 것 같다. 일본에서 발이 묶인 크루스 여행자들 3,700명이 하선을 못하고 배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는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피난가고, 도망가야 하는 것일까? 마치 닭장에 갇힌 닭처럼 결국 잡아먹히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므로 성이 요동치 않을 것이다.”(5)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만이 견고하게 서 계신다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재양의 날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 산이 진동하고, 바닷물이 요동칠 때,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때, 우리는 여호와께 피난을 가서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 왜 하필 나인가? 이러한 재앙이 왜 우리를 삼키려하는가?  하나님은 왜 하필 나만 구원하셨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계속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한다.
다음 이 시의 후반부는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자연 재해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전쟁이다. 전쟁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조리게 하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전쟁을 겪은 사람에게는 생각만 해도 무섭다. .
유다 왕 아하스 때에 북 이스라엘과 아람 군대가 유다를 치러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왕과 백성들이 마치 바람에 사시나무가 흔들리듯이 그들의 두 무릎이 부딪쳐 떨었다고 했다. 이스라앨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산으로 도망을 가든지, 절벽에 구멍을 파서 그곳에 피난했다. 갈릴리 바다 곁에 있는 알베르 산 절벽에는 예전에 피난민들이 구명을 파고 피난살이를 했던 흔적이 지금도 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데리고 아둘람 굴로 도망갔는데, 지금도 그 바위 동굴이 있다. 엔게디에는 사울을 피하여 도망가던 굴이 있다. 마사다는 유명한 피난처이다.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함락되고 망할 때 약 1000명의 유대인들이 마사다  로 도망가서 3년 동안 항거하며 항거했지만 결국에는 자살로 막을 내렸다.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며, 망하느냐 흥하느냐하는 문제라서 그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가 전투에 임할 때,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받는다.  신 20:3-4에는 제사장이 다음과 같이 축복하고 격려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오늘 너희는 너희 적들과 싸우러 나간다. 너희 마음에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며, 당황하지 말고,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여호와 네 하나님    께서 너희화 함께 가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과 싸우고 너희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신 20:3-4)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언급하는 말씀이 두려워하거나 떨지 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피난처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피난처이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그치게 하는 분이라고 말한다(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아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신다.”(11) 라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전쟁을 막고 그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만이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망갈 생각 말고 하나님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전쟁은 도망간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피난 갈 생각을 해야 한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   
이라고 부른다. 만군이란 큰 군대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에게는 하늘에 천군이 있고, 지상에는 지상군이 있다. 지상군은 상비군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이든지 누구든지 그의 군대로 불러 쓰실 수 있는 분이다. 이스라엘은 상비군을 두어 상비군을 지휘할 수 있는 왕을 달라고 했다. 하나님은 왕을 주셨다. 그러나 왕과 그의 상비군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것을 알아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기자는 91:9-1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네가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희 거처로 삼았으므로, 불행이 너를 덮치지 못하고, 재앙이 네 장막에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주께서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너의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또한 48:14절에는 “참으로 이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죽을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라는 말로 자연 재앙과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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