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강성률 목사.jpg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 하였나이까?”(56:8).

 

화창한 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정오 즈음이면, 창문 맞은 편 벽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소리 없이 고불고불 오르는 아지랑이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밖을 보면 눈에 쉽게 띄지 않아도, 벽에는 이런 모습들이 스크린처럼 펼쳐집니다. 머잖아 이 아지랑이들은 구름이 되어 가장 적절한 순간에 단비로 내려올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우리의 눈물에도, 우리의 탄식에도, 우리의 선행에도 주님께서 때로는 전혀 반응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눈물 한 방울도 허비 되지 않고 아지랑이처럼 올라 차곡차곡 주님의 병에 채워져 가장 적절한 때 은혜로 내려 주십니다.

 

지금 당장 응답이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때와 기한을 정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성경학자들은 시 56편을 삼상21:10-15절 이하의 사건과 연관 된 시로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가드왕 아기스에게 피하지만 그곳 신하들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자 미친 체 하고 도망쳐 나옵니다. 어디에도 발 디딜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그 후로도 다윗은 10여 년 동안 유리하면서 육신적으로는 잠시도 쉴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합니다. 삼천 명의 택한 용사들과 함께 그를 수색하러 다니는 사울의 목숨이 도리어 다윗의 손에 잡히는 기이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왕이 되기 위하여 한 번도 모사를 꾸미지 않았음에도, 사울을 끝까지 사랑하고 참아주는 그에게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심판하시고 왕이 되게 하십니다. 그의 눈물, 그의 신음, 그의 탄식을 하나님의 병에 담아 신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악에 대한 징벌도, 선에 대한 포장도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때에 맞게 적절하게 하십니다. 우린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에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행위에도 상급을 주장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은밀히 행하는 선이나 심지어 눈물까지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인내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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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주의 병에 담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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