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음의 공포를 통제할 수 있을까?
2020/03/27 15: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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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리온 힐의 공포를  분석하자 라는 글을 보면 이렇게 공포를 설명한다.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여 모든 상상을 파괴하고 모든 자신감을 좌절시키고, 모든 열의를 빼앗아가고, 모든 의욕을 꺾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 한다. 또 공포는 사람의 혼을 빼고, 예리한 사고력을 파괴하고, 집중력을 분산시키며, 인내력을 흔들리게 하고, 의지의 힘을 죽이고, 큰 뜻을 부수고, 기억을 흐리게 하며,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실패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처럼 공포는 사람들을 나태하고 불행한 세계로 빠뜨려 버린다. 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무서운 공포는 왜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날까? 이는 영물인 악마가 우리의 마음에 공포의 씨를 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악마가 뿌린 이 공포 때문에 육체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면 공포는 무엇인가? 공포는 마음의 상태인데 여섯 가지가 있다고 나플리온 힐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째 가난의 공포이다. 가난에 대한 공포는 여섯 가지 공포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며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또한 가난만큼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없다. 진정한 가난을 체험한 사람만이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난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돈이나 재산이 없으면 세상에서 신용을 얻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손에 넣으려 한다. 그러다가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웨스트 브룩 페글레의 말을 빌리어 보면 돈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쇠붙이나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니 영혼이니 하는 보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 비판에 대한 공포이다. 비판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선천적인 습성이라고 한다. 이 습성은 친구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를 파멸시키므로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셋째 질병에 대한 공포이다. 우리가 병을 무서워하는 큰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치료비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병의 실체도 잘 모르면서 근거 없는 추측이나 막연한 불안으로 인해 공포를 느낀다. 어느 종합병원의 조사에 다르면 치료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의 75퍼센트가 ‘상상의 병’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공포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병이 생긴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힘이 넘치고 건강해 질 수 있다.
넷째 실연에 고통이다. 실연에 고통은 남자나 여성이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고통이다. 미국 전 제40대 대통령 레이건도 실연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만난 여인과 8년간 연애를 했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둘의 결혼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대학을 졸업 후 두 사람은 약혼반지를 교환하였고 가능한 빨리 결혼하자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졸업과 함께 교사생활 한 여인과 거리관계로 두 사람은 자주 못 만났다. 어느 날 레이건은 언니와 함께 여행 중 유럽의 한 외교관을 만나 사랑에 빠진 변심한 약혼여로부터 우편으로 되돌려 보내온 약혼반지를 받았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님의 위로를 받고 고통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런데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경험을 통해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다섯째 늙음에 대한 공포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과거는 점점 늘어나고 미래는 점점 더 줄어든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다음의 두 가지에서 온다. 고 한다. 하나는 노인이 되었을 때의 경제 문제에 대한 걱정이고, 또 하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저세상’에 가까이 간다는 생각도 노령에 대한 공포를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몸이 약해진다는 것도 노령을 두려워하는 원인이이다 특히 성적 매력의 쇠퇴에 대한 걱정은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원인은 노후 걱정이다. 그리고 양로원이란 말은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다. 인생의 후반을 양로원에서 보내야 한다면 무척이나 고독하고 활동할 자유가 없을 것이다.
여섯째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광신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개인들은 종교를 맹신하는 경향이 강해 문명인 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적다고 한다. 인간은 몇 천 년  전부터 자신은 언제, 어디서 죽을 것인가에 생각해 왔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여러 말과 학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로 왔다가 때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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