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와 르네상스
2020/05/15 15: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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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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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이라 번역되고 있는 중세 베네치아어 “quarantine”은 “40일간”을 뜻하는 "Quarante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한 월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서 썼다.  
당시 베네치아공화국은 유럽과 오리엔트를 연결하는 교역으로 유지발전하고 있던 터에 오리엔트에서 역병이 발생한 것. 그러나 당장 국경을 닫아버릴 수는 없는 처지였다. 뿐만 아니라 중근동으로 통하는 성지순례를 뒷받침하는 관광대국이기도 했기에, 오리엔트에서 들어오는 선박에는 많은 물자들 뿐 아니라 유럽인 순례자들도 다수 수용되고 있었다.
1423년 궁리 끝에 역사상 초유의 역병대책에 나선다. 역병 발생지에서 온 선박은 도심에 가까운 부두에는 접안할 수 없도록 하고 승객은 정해진 섬으로 인도되어 강제 하선케 했다. 그 섬의 이름은 ”나사렛“. 이름만으로도 ”격리를 위한 섬”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터. 선착장 둘레는 높은 돌담으로 둘려 싸여 있기는 하나 그런대로 제법 넓었고 푸름도 있었다지만, 40일을 버텨내어야만 도심부로 상륙할 수 있었다니.
베네치아의 역병 대처 방법은 오늘날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들을 무색케 할 지경이 아닌가. 그 동기에 대한 시오노의 풀이가 아주 그럴듯하다. “그것은 특별히 인도적이어서가 아니라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사람 하나하나를 자원으로 여겼기 때문”이라 했으니. 그리고 이웃하는 파도바 대학의 지원을 받는 우수한 의료진의 활약 때문이라고도 했다.
덧붙여 오늘날 베네치아의 곤돌라들이 모두 검게 칠해지고 있는 연유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원래는 요란한 색으로 치장했던 것을 페스트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란다. 생 로코 넓은 회당의 천정과 벽면은 페스트의 두려움을 잊지 않게 하려는 틴토레토의 걸작들로 채워져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교역으로 먹고사는 해양 도시 베네치아는 역병대책을 확립함으로써 “지중해의 여왕”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후 거의 5백년에 걸쳐 경제력을 유지하며 건축, 회화, 음악, 연극 등 다방면에 걸친 문화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베네치아가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인재를 내보내기 보다는 유입한 도시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시오노가 그렇게 쓴 것은 그녀의 저서 <그리스인 이야기>를 의식해서일지도 모른다. 아테네가 걷잡을 수없이 기울어지는 현상을 그리면서다. “그러나 더 질이 나쁜 현상은 사람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것. 이전에는 타국에서 아테네로 사람들이 흘러 들어왔다. 그러던 것이 펠로폰네소스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아테네로 부터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모양새로 바뀌게 된 것이다...그리스 비극 3대작가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리피데스는 마케도니아왕의 초청을 받아 아테네를 버렸다. 장래를 촉망받던 젊은 비극작가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아가톤도 마케도니아로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고 이 두 사람이 타국으로 가서 걸작을 쓴 것도 아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투의 승자이면서 ‘스파르타의 패권 시대’로 일컬어지는 시대가 되었어도, 스파르타에는 파르테논에 필적할 만한 장대한 신전을 세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테네가 있고서야 그리스’라는 말은 과장도 과대평가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또 하나의 스타 보카치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의 <데카메론>은 페스트가 피렌체를 덮쳤을 때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코에 피가 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징후였습니다만, 그와는 달리 이곳(피렌체)에서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감염초기에는 사타구니와 겨드랑 아래쪽에 종기가 나서... 어떤 사람은 사과만큼 커지고 어떤 사람은 계란만큼 번졌습니다. 그래서 ‘가보초’(페스트 종기)라고들 불렀습니다. 이 무서운 종기는, 앞에서 말한 대로, 신체의 두 곳에서 시작해서 온 몸으로 번져가지만, 모양이 변하는 데 따라서 검거나 납빛 반점이 팔이나 허벅지나 신체의 다른 부위에도 나타났습니다. 곧 반점은 그 사람에게는 죽음의 징표가 되었습니다...질병의 무서움에 더해 사람들의 단말마적인 신음 소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죽음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복된 표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공포의 대상으로 변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숨져 가는데 냄새 또한 지독했습니다. 구세주 하나님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데카메론>에서는 “영적이거나 정신적 죽음”이 처절한 “육체의 죽음”으로, “내세 긍정”이 “현세 긍정”으로 바뀌어 진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새로운 터전을 얻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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