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이영은 목사.jpg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두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나과 브닌나입니다. 아내의 자리는 하나인데 거기에 둘이 들어가 있으니, 경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경쟁은 시기와 다툼을 낳고 그로 인하여 미워하며 대적이 됩니다. 게다가 브닌나는 자식이 있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고,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합니다.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엘가나는 매년 온 가족을 데리고 성소에 예배하러 갑니다. 그때 하나님께 받은 은혜대로 헌물을 드리며 온 가족에게 한몫씩 떼어서 챙겨주는 데 한나에게는 두배를 주었습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자식이 있는 브닌나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해서 두배로 주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21:15~17) 법대로 하면 브닌나는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을 한나에게 빼앗겼다는 부당함으로 억울합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한나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매년 엘가나가 한나에게 두 배씩 챙겨 줄 때 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아마 자식이 있는 자기의 우월함으로 자식이 없는 한나의 상처를 건드리면서 감정을 충동 시켰을 것입니다. 한나는 한나대로 억울하기만 합니다. 자식이 없는 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태를 막으신 것인데 어찌 하겠습니까? 축복을 받는 그 복된 자리에서 한나는 마음이 상해서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슬픔과 괴로움으로 마음이 아픈 여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아들 열명 보다 내가 더 낫지 않느냐는 엘가나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이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 남편의 두 아내 중 하나로 살아가면서 자기의 노력으로 남편의 사랑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아들을 낳아 기업의 대를 잇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한나는 자기의 고통을 어디에 쏟았을까요? 브닌나는 자기 고통을 한나에게 쏟아서 한나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기의 고통을 브닌나 처럼 상대에게 쏟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가 그 앞에서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자기의 원통함과 격한 감정을 하나님과 함께 소통하였습니다. (삼상 1:15) 한나의 아픔이 하나님의 아픔이 되고 한나의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이 됩니다. 한나는 자기의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 놓으며 어느새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기 시작합니다. 제사장 집안이 타락하여 하나님은 더 이상 그 백성에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치는 게 저주인데 누구 그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한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자기에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아들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던 한나는 자기가 그토록 원하던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맹세하고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받으시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고통이 소명이 되어 한나는 위대한 사무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멈추었던 그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하면서 온 이스라엘을 말씀으로 구원하셨습니다. 한 여인의 슬프고 아픈 마음으로 시작한 사연 있는 한 가정의 불행한 고통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때 이런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주 안으로 들어와 그 손에 들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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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소통하는 기도’(삼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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