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다와 바로 인접한 나무들 가운데 유독 소나무가 지쳐 보였습니다. 얼마나 바람을 많이 맞았는지 잎사귀 뿐만 아니라 가지도 상한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 소나무 가지에는 유달리 솔방울이 많이 달려 있었습니다.
같이 길을 걷던 서광수 장로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장로님, 왜 저 소나무만 저렇게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을까요” 그랬더니 서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나무도 자기 죽을 날을 알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저렇게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저는 서장로님의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던 소나무중에 바람을 좀 덜 맞거나 지쳐 있지 않은 소나무는 솔방울을 그리 많이 달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풍을 직접적으로 맞고 솔잎과 가지가 상한 소나무는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그래. 우리 교계도 마찬가지다. 반기독교적 사상의 바람,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는 해풍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저 소나무처럼 활동을 많이 하며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많이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소나무가 더 기특하게 보이고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해풍을 전면에서 맞으며 행여라도 자신이 너무 힘들어 지쳐 쓰러지게 되면 솔방울을 통해서 다음세대를 이어가도록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과연 솔방울을 통해 다시 태어난 소나무는 어미 소나무를 대신해서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소나무가 지치고 힘들게 되면 많은 솔방울을 맺어서 또 그 자리에 소나무 숲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그 순간 제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누구보다 반기독교적인 해풍과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는 폭풍을 많이 겪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