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대 전환과 한반도
2020/06/12 11: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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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목사/한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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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로 사람들은 지쳐간다. 더구나 없는 자와 민중들의 삶은 초조와 불안과 생존의 싸움으로 맥이 풀려간다. 한반도의 시계는 다시금 평창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극도로 고조된 남북의 긴장 상태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적 무드가 조성되고 남북정상이 짧은 시간에 세 차례나 만나며 통일은 아니더라도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이끌어 내며 당국자들의 교류를 넘어서 민간교류 활성화를 기대했었다.
북미회담의 중개자로 사실상 당사자로서 남북의 문제를 여전히 외세에 의존해야 하는 흐름을 유지해 왔다. 대통령과 북한문제 담당 참모들이 뻔질나게 왕래하였다. 그러나 국제 장사꾼인 트럼프와 그 참모들은 사실상 북한과 남한 정부를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았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남북의 분단을 가로막고 지속 영구화 시키는 것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과 그들의 자국 이익의 정책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악한 세력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북한을 비난하는 전단을 살포하는 소위 탈북민에게 자금을 수혈하는 배후가 드러난 상태이다. 여기에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자국의 이익을 먼저 계산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을 외세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북한의 남한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모든 소통 관계를 끊었다. 물론 단순하게 전단 살포만이 그 이유는 아닐 수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문제는 코로나 훨씬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양극화의 문제가 인간들의 관계를 갈등과 적대적으로 심화 시키고 있다. 이것은 구조악을 만들어 온 자본과 권력의 결탁의 결과이다.
삼성 이재용의 재벌 세습을 위한 합병의 문제는 자본과 권력의 비열한 야합의 대표적 예이다. 코로나를 해결하려는 대통령과 정부의 다가적인 움직임은 당연한 직무의 처사이기도 하다. 인간의 복잡한 문제들을 대통령이 다 풀어줄 수는 없다. 닥쳐오는 재난과 재앙들을 한 사람이 풀어줄 수는 없다. 이러한 현실들을 운명이라 치부하고 어떤 이들은 신의 뜻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다. 개인 각자가 당하는 실존적 문제들을 혼자서는 풀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국가나 공동체가 함께 해야만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지구상 어디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실존 뿐 아니라 국가나 나라의 문제, 양극화와 절대적 빈곤과 굶주림의 문제들도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 문제를 대처하지 못하는 민중들의 아우성과 외침들이 들려온다. 이럴 때에 종교적 아편 주사를 들고 이단과 사이비 사교들의 교주와 집단들이 춤을 춘다. 의학의 발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로나에 떨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후의 인간들의 문명사는 새로운 시작을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인간들은 핵무기 뿐 아니라 각종 화학적 무기와 세균 전쟁을 준비해 왔다. 지구촌의 기후와 함께 당과 바다의 오염 들돠 썩어 가는 문제들, 그리고 에너지의 고갈과 새로운 에너지의 개발문제, 식량의 위기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우리가 살아 온 문명사의 대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들이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는 진리는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들이 소유하고 소유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먼지와 티끌로 돌아가 썩어 없어질 것들이다. 물질에 대한 욕구를 위해서 신의 이름을 앞 세원 거짓을 일삼는 악마들의 춤이 멈추지 않는다.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악한 세력들이 우글거린다. 문명을 만들어 오고 그러한 전환의 주체는 결국 인간 자체이다. 무기를 만든 자도 전쟁을 하는 자들도 인간이다. 탐욕의 바벨탑을 쌓아 가는 자도 결국 인간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혈족과 학연 지연들의 관계를 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정서 안에서 이러한 3대 관계적 기반을 흔들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디나 끼리끼리의 집단과 패거리 집단 문화를 넘어서 가기는 힘이 든다.  그러나 조선의 진정한 선비는 적어도 公과 私의 문제는 넘어서야 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의 길을 가는 자라야 만이 선비로 등록 되는 것이다. 하물며 창조주를 말하고 그것을 매일 강단에서 설교 하는 목사라면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코로나를 통해서 문명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도 교회는 여전히 화석화 되어 그 자리에 멈춰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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