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8-30)
2020/06/17 10:2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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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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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샘과 같습니다. 샘에서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처럼 말씀 또한 시대에 따라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솟아납니다.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좋아하는 이 말씀에 대한 연구는 벌써 2천년도 넘게 상고 되었지만 고갈이 되지 않고 더욱 풍성해지고 새롭습니다. 오늘은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들은 , 이제는 내가 짐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나.’라고 믿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이 전에 멘 멍에를 풀어버리고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전에 멘 멍에는 무슨 멍에입니까?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하는 멍에입니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마음을 쉬게 할 수 있고,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습니까?

 

나의 멍에를 메고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3:6). 우연히 되었거나 누구 때문에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른 멍에이며 우리는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정이, 직장이, 사람관계가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임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멍에는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목이 눌려옵니다. 코뚜레는 도망가면 갈수록 더욱 아파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멍에라고 생각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멍에는 조이지 않고 코뚜레는 아프게 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능히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십니다.

 

물론 그 환경이 기도할 수 없는 환경이거나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합당치 못한 경우까지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들이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직장 동료가 마음에 안 들어도,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환경입니다.

 

주님은 또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멍에를 멘 사람은 배울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배워야 합니까? 예수님께 배워서 예수님의 해석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자칫 마귀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배우는 사람은 일을 통하여, 멍에를 통하여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 나갑니다(:20). 하지만 마귀에게 배우는 사람은 남을 만들어 주려하고 남을 가르치려합니다. 나도 나를 못 만드는데 어떻게 남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만들어지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도 만들어 주십니다.

 

10:38이하에는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거기서 마르다는 일을 보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습니다. 마르다는 참으로 분주했습니다. 이 것 저 것 장만할 것이 많았습니다. 애써서 예수님이 드실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언니가 수고해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의 없어 보이고 눈치 없어 보입니다. 마르다 입장에서는 괘씸할 만도 합니다.

 

직장 상사가 열심히 일을 하는데 부하직원은 가만히 앉아서 책만 보고 있다면 상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르다가 힘든 것은 많은 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동생의 태도가 더 힘들게 합니다. 그를 참소하는 육신의 생각들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섭섭한 생각들입니다. 모두 4명을 위하여 음식을 장만하지만 분주하고 무겁기만 합니다.

 

참다못한 마르다는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의 대답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르다도 일손을 그만두고 말씀만 들어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양심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 가지 일입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쓴 로렌스처럼 음식을 장만하는 가운데서도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 때도 할 수 있습니다. 청소할 때도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하려는 마음이 마리아처럼 주님께 듣는 것입니다.

 

12:1이하에도 마르다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에는 예수님과 제자들 나사로의 가족 모두 16명입니다. 거기서 마르다는 여전히 일을 보고 마리아 역시 여전히 예수님의 발아래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이전과 달리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 전에는 겨우 4명이었어도 불평하였지만 이제는 16명의 음식을 거뜬히 장만합니다. 지난번에 배웠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참소를 듣지 말고 오직 양심을 통하여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라.”는 말씀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신앙인들이 힘든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일들이 주님이 주신 멍에라는 생각과 그 멍에를 통하여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직장인으로서, 자녀로서 당신이 선 곳이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라는 것을 믿고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분명히 체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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