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한 사람’
2021/04/30 08: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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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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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5:1)

 

성경에서는 한 사람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전체가 살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고전15:22).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하여 7년 흉년 때 애굽 백성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도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낭패를 본 일도 있습니다. 죄를 범한 아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라는 작은 성에서 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다윗왕의 잘못 된 인구조사로 인하여 이스라엘 7만명이 죽은 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요나로 인하여 그가 탄 배가 파선 될 뻔 한 일, 백부장의 잘못 된 판단으로 바울과 함께 276명이 탄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일 등(27:37) 찾아보면 참으로 많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성은 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하였습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짓밟혔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성전이 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입니다.

 

공의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자신에게나 정의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구하는 일이란 예수님을 찾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은 의를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51:1).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을 찾아 구하는 생활이 진리를 찾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동할까?’ 하는 행동입니다.

 

22:30이하는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 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직접 행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다가 찾지 못하여 성을 멸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한 사람은 자신이 기도하며 행하는 사람입니다. 거룩의 성을 쌓으며 멸하지 못하게 하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을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9~10)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32:11~12). 모세의 이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칫 진멸당할 뻔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는 모세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거룩의 성을 쌓으면서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거룩의 성을 쌓지 않으면서 기도만 한다면 온전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기도하고 그 기도한 바를 행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사람의 음성을 주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되니 나 하나쯤이야 뭐 대충 믿어도 돼.’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믿는 사람 모두는 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그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그가 탄 배에서 한 사람이었고,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한 사람이었듯이, 성도 개개인은 가정에서 한 사람이고, 직장에서 한 사람이며, 그가 맡고 있는 팀에서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생 라합이 하나님께 합당한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그의 집이 모두 구원을 받았듯이, 사도행전 16장의 간수 한 사람이 돌이킴으로 그의 온 집이 구원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미는 조직마다 구성마다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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