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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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주변에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현재 공식적인 숫자만 200만 명이 넘는다.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될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외국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에 나가면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사역하는 교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한 선교가 돕는 선교나 봉사하는 선교에 국한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역이라든지 고부간의 갈등을 위해 다문화상담을 하고, 의료적인 도움이나 생활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필자는 선교라고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지 선교는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선교사들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선교 현지에 있다 할지라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적극적인 활동은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현지 선교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다문화 사람들을 선교하여 그들을 다시 그들의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에 힘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안디옥교회를 통해 다문화선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다문화 지도자들을 통한 선교에 집중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다문화교회인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 사회적인 부분과 함께 선교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교회 확장이었다. 그 과정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로 죽은 스데반 순교이후 헬라문화와 로마문화가 공존하는 이방지역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 시작이다. 이방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 가운데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초창기 시리아 안디옥교회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공동체를 이룬 최초의 다민족교회로 주목한다. 다민족교회는 다양한 문화, 다양한 민족, 다양한 계층들이 유입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특징을 가진 다문화적인 교회공동체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의 형성과정과 구성원의 비율 그리고 구조적 형태에 따라 다문화적인 교회공동체로 볼 수 있는지 또는 소수의 이방인이 포함된 유대인교회공동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평가하는 방법은 당시 유대인중심의 초대교회가 이방지역으로 확대되며 교회의 중심으로 이방인들이 유입될 수 있었던 지역적 배경 및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분석이다. 그렇다면 시리아 안디옥의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다문화교회가 되는 부분과 관련이 있는가? 안디옥교회의 형성된 과정과 구성원은 다문화적인가? 구조적으로 다문화교회 공동체를 이룬 안디옥교회의 대표적 지도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먼저 안디옥교회공동체의 형성과정과 인종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유대인과 이방인 비율로 그 공동체가 구성되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안디옥교회가 다민족교회라는 사실을 다소 간과한 채 안디옥교회의 다문화적 구조에 대한 연구보다 주로 바울의 선교적인 사건에 더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므로 성경적 다문화교회 모델로 초창기 안디옥교회를 연구하여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인종, 다양한 계층의 구성원과 지도자들이 갈등 없이 공존한 것을 밝힌다면 충분히 보편적 모형이 될 것이다.

 

시리아 안디옥은 당시 로마 제국 3대 도시 중 하나로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 도시로 로마의 지방관이 거주하는 행정도시며 중심거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안디옥은 약 50만 명의 인구를 가졌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대략 480km 떨어진 곳이다. 특히 이곳은 로마제국의 다른 주요 도시들과 같이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접촉점 역할을 하는 곳이며,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들이 공존하여 상호 영향을 끼친 도시이다. 초기 건설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몰려든 시리아 안디옥은 현지인부터 헬라인, 이집트인 등 여러 인종과 민족이 공존했지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도시 형성 초기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그들의 신분은 타민족에 비해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키너(Craig S, Keener)는 당시 시리아 안디옥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를 대략 65천 명 정도로 추정한다. 도시에서 인구 비율이 10% 이상이나 차지했다면 안디옥에서의 유대인들은 정치적 위치와 사회적 신분이 상당히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시리아 안디옥을 사회학적으로 평가하자면 인구수와 인구밀도가 높아 특정 민족공동체간의 공간적 분리나 독립성이 어려웠다. , 다소 협소한 주거 환경으로 인해 여러 인종과 민족이 섞여 생활하는 다문화도시였다. 권주은 박사는 이 같은 다문화형태를 갖춘 시리아 안디옥에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초대교회 가운데 최초로 형성된 다민족교회 공동체로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는 다문화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이곳으로부터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위대한 바울의 선교도 시작되게 되었다.

 

<그간 선교칼럼을 연재해 오던 조귀삼 교수의 뒤를 이어 금번호부터 이충웅 교수가 칼럼을 맡게 됐음을 알려 드립니다. 본보는 지난 20여년 넘게 선교칼럼을 연재하며, 한국교회 선교 발전에 큰 공을 세우신 조귀삼 교수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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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칼럼] 이충웅 교수의 ‘21세기 다문화 선교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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