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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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삼하18:18)

 

인사유명(人死留名),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몸과 머리털과 살갗은 부모님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님을 드러냄이 효의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사람들의 심리 가운데 본능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압살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의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어 한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아들이 없어서 한탄한 것이 아니라, 부패한 자신의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한 것입니다. 원래는 아들 셋과 딸 한 명이 있었지만(삼하14:27), 아들들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습니다. 30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은 자신의 소원과는 달리 빛나는 이름이 아닌 가장 부끄러운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자신의 명예를 위하고 기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결코 좋지 않게 나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들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아라랏 산이 있는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시날산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노아 후손들인 그들은 모두 친족이고 동족의식이 강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가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흩어질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서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케 하자.”(11:4). 땅 끝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하늘까지 닿는 대를 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 내기를 원하였고, 온 지면에 흩어져 생육하고 번성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보다(9:1),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자신들의 뜻을 세우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지면으로 흩어졌고, 하늘 끝까지 쌓으려 했던 탑은 더 이상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 탑의 이름은 바벨탑이었습니다. 바벨은 혼잡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명예영광심에 빠지면 그 이름은 무너지며 어려움이 반드시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하였지만 왕이 된 후에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일에 더 마음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이기게 해주셨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일에 마음을 썼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삼상15:12). 스스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였던 사울은 전쟁에서 블레셋 군인에게 죽게 됩니다(삼상31:4~6).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명예영광에 마음 쓰고 살아가면 그만큼 고난과 애통이 오게 됩니다.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8:7).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마음, 명예영광심은 고난과 애통의 씨앗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마음, 칭찬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화를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장 루시퍼를 영화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지위까지 넘보다가 그의 부하들과 함께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버릇은 사탄이 된 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하와를 유혹할 때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로 유혹하였습니다(3:5). 이처럼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명예영광심은 사탄이 사람들에게 넣어주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미혹되어 마귀의 꼭두각시놀음을 합니다. 심지어 세상에서 얻지 못한 명예영광을 교회에서 누려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그를 보는 바와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고후12:6).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그 이상 되게 보이려고 얼마나 꾸미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인생 최고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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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압살롬의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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