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라’
2021/06/15 11:3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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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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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1~3).

 

최근에 모 당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 된 분이 대표 수락 연설에서 비빔밥 원리를 강조하였습니다. 비빔밥은 갈아서 각 식물의 특색을 없애는 녹즙기나, 녹여 각각의 광물이나 금속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는 용광로와는 다르게 각 채소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하나가 되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를테면 오이, 콩나물, 당근, 고사리, 시금치, 참기름, 계란프라이 등 각자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맛을 그대로 살리고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각자의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자신이 속한 당의 일원으로 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한 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모두 각자 자신의 특색만으로는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소금이 소금덩어리로 그대로 있다면 고르게 퍼지지 못하고 어떤 부분은 짜고 어떤 부분은 싱거울 것입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역시 액체 상태가 아닌 고체 상태인 참깨 들깨로 이루어졌다면 전체를 고소하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고추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골고루 퍼져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소금이나 참깨 들깨 고추로부터 녹여졌거나 갈아진 채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빔밥 원리, 서로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하나 됨의 원리는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는데 있습니다(고전14:26).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성령의 기름부음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각 지체들에게 흘러 내려오며(133:1~3),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기도가 응답됩니다(18:19~20). 높은 나무는 쓰러지기 쉽지만, 높은 산은 무너지지 않으며,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4:12).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본문 3절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말합니다. 곡식 단을 묶는 끈이 있듯이 성도와 성도 사이에 하나가 되게 하는 끈이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평안을 가져오는 줄을 뜻합니다. 성경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추구하는 자는 사망을 초래하지만 영을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면 평안합니다. 영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착한 양심입니다. 성도 개개인이 착한 양심을 쓸 때 심령이 평안해지며 성도가 서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2:1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성도들은 몸의 지체입니다. 몸이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듯 성도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연합이 될 수 없습니다. 반신불수가 되고 맙니다. 성도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잘 살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218절 이하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중에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갔을 때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아가보라고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11) 그러자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울면서 권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 바울에게 간곡히 권했던 사람들의 말을 단호히 뿌리치고 바울은 기어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바울과 만류하는 사람들 사이에 큰 언쟁이 있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언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태도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그렇습니다. 바울의 뜻도, 가지 말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뜻도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모든 것이 매듭지어집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은, 다툼 끝의 화목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할 때 이루어집니다. 교회에서나 집안에서나 교단에서나 분란이 일어나고 소란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뜻, 단체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생깁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접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됨은 서로 먼저가 될 때 이루어집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2:10). ‘서로라는 것은 조화를 의미하며, 교통을 의미하며,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가 먼저 하길 기다립니다. 사랑도 그가 먼저 하기를 바랍니다. 전화도 그가 먼저 하기를 바랍니다. 존경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코 서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모니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자존심을 굽히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나가 됩니다.

 

어거스틴은 본질적인 것은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함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 구원론 등이 해당 되며, 비 본질적인 것은 각자의 은사적인 면이나 성경 해석상의 다양성 등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3:14). 하나 되게 하는 결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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