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2년, 중국에서는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비기독교운동’(非基督敎運動)이란 것이다. 그 뜻은 기독교가 하는 짓은 다 틀렸고, 기독교는 못된 짓을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먼저 베이징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시작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적 힘을 실은 것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좌파들이었다. 가장 열심을 낸 조직은 ‘공청단’ (共靑團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인 한 명 늘어나면, 중국인이 한 명 줄어든다”며, 중국에서 기독교가 계속 전파되면 국가도 망하고 민족도 망한다고 선동했다. 그래서 국민당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학교에서 기독교를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1922년부터 소위 ‘교육권의 환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회가 설립한 모든 미션스쿨에서 교회를 추방하고 교육부가 직접 관할토록 조치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에 관한 필수 수업을 개설할 수 없고, 선생과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 의무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어 소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철저하게 기독교를 추방하였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종교교육으로서 선택과목이나 과외활동으로서만 기독교를 인정했다. 학교에서 교회를 축출하는 이 교육권 환수운동은 1927년 5년만에 완수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비기독교운동’과 ‘교육권 환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반기독교세력이 모두 기독교 학교 출신들이었다. 당시 유명한 기독교 학교들이 앞장서 정부가 학교를 환수하고 서양선교사들을 축출하라고 촉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때는 아직 중국이 공산화 되기 전이었다.
◇딱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미션스쿨이 바로 이 같은 위기에 처했다. 좌파들은 기독교가 학교교육에 개입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학생들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미션스쿨의 본 설립 목적인 구성원의 예배의 참석과 성경공부를 거부한다. 그로 인해 예배와 성경공부가 사라진 미션스쿨은 전교조가 장악한 지 오래이다. 좌파정부는 이 마저도 숨통을 끊으려는 ‘사립학교법’을 순차적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