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남양 김명혁 박사(1937- )
2022/06/28 15: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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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 연구소장/ 대신대 전 한국교회사 교수)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영원과의 만남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 초연의 자세를 가질 때 고난도 소망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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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관주 목사의 아들로,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남양 김명혁(南陽 金明赫) 박사는 193764, 순교자 김관주(金冠柱, 1905-1950) 목사의 아들로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후 1~9세까지는 평북 의주에서 살았고, 9~11세까지는 평양에서 살았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횡포로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단신 월남하여 서울에서 방산국민학교를 마치고, 서울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6.25 동란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했다. 이때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고 부모님들의 대를 이어 목사로서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는 대구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당시 어린이 사역의 대가로 알려진 안성진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신앙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 피난지에서 이성봉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해 수 차례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그 목적은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휴전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다니면서 교회는 창동교회와 대창교회에 다니며 김치선 목사 밑에서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았다. 그는 그때 새벽기도회의 중요성과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김치선 목사는 새벽마다 한국의 28,000여 동네마다 신앙의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역설했다.

 

남양은 1961년 대학을 마친 후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의 교수진은 박형용 명신홍 한철하 최의원 오병세 강태국 등이었다. 그는 특히 한철하 교수에게 많은 도전과 감화를 받았다. 한철하 교수는 교회사를 사건 위주가 아닌 주제와 사상의 흐름 위주로 강의했다. 어거스틴 연구 강의 시간에는 그의 초기 작품들을 영어로 읽으며 그의 신학방법론과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을 다루었는데, 그 당시 그에게 많은 감동과 학문에 대한 정열을 불어넣어 주었다. 남양은 이를 계기로 어거스틴을 전공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 공부

그는 총신에서 1년을 마친 후, 1962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교장 맥클레이(A. Alexander Macleay) 박사의 교회사 강의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다시 1966년 웨스터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로 가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친 후, 뉴 헤븐에 있는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신학부로 가서 다시 석사과정에서 유명한 역사신학 교수 자로슬라브 펠라칸(J. Pelican) 교수의 지도하에 교부들에 나타난 이사야서의 메시야적 해석이란 논문을 썼다. 그의 신학과 사상은 그가 쓴 저술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신학의 원천은 그의 역사관에서 출발한다. 그는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배우면서도 역사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그 후에 목회자의 삶에 있어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하였다. 사람이 참된 삶을 위하여서 하나님의 참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서는 성경의 계시와 성령의 조명과 함께 필요한 것이 나 자신의 역사적 안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나 자신과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분별하고 습득하는 세 가지 척도와 자원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조명과 역사적 안목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역사의 중요성을 바로 인식한 펠리칸(Jaroslav Jan Pelican), 라토렛(K.S.Latourette), 베인톤(Roland H. Bainton), 존 스타트(John R.W. Stott) 박사 등의 역사관을 따라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책 제1권이며, 교회사를 하나님의 책 제2권이라고 하였다. 이들로부터 기독교 역사관을 배웠다.

 

남양에게 역사란 무엇이냐? 라고 한다면, 그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 영원과의 만남이라고 한다. 시간의 통합적 연속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세 가지 견해를 소개한다. 1)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Facts)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Lanke의 입장), 따라서 역사가의 과업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데 있다. 2)역사란 과거 사건들을 해석(Interpretation)하는 것이란 견해가 있다(R.G. Collingwood), 즉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본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역사가의 과업은 그의 마음 속에 과거의 역사를 재연하는 것이라고 본다. 3)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기술함과 아울러 그것을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이라는 견해(Edward Hallett Carr)이다. 즉 역사는 사건과 해석을 포함하며,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견해로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붙잡는 것이라는 입장이 있다.

 

그런데 남양은 세번째의 견해에 따라서 역사를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데 동의하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만남과 대화가 역사요, 역사적 안목이라고 한다. 과거의 역사는 나와 상관없는 역사가 아니다. 오늘 내가 당면하는 문제들을 이미 과거의 역사가 먼저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나의 문제와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읽을 때 오늘 나의 위치와 문제를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게 되고, 오늘의 현실을 바로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되며 내일을 향한 보다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남양의 종말론적 역사관이라 할 것이다.

 

남양의 역사관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양은 종말론적 초연을 강조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나 밖에서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의 점에 서서 내려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사후 체험을 한 사람이 자기 밖에서, 자기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위치를 멀리 종말론적 오메가 포인트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종말론적 초연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 나아가는 구속사의 과정과 방편들이라는 인식을 가질 때, 그 사건들의 의미는 크고 분명해진다. 특히 오늘의 내가 구속사의 한 점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식하게 될 때,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의 의미와 용기와 기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종말론적 초연의 자세를 가지게 될 때, 나에게 가해지는 오해와 멸시와 박해도 나를 도무지 불쾌하게도, 낙심하게도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보람과 기쁨과 용기를 가지고 역사 창조의 대열에 나서서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안목을 지닌 신앙의 사람들을 성경은 일컬어 "세상이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11: 37)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양면성의 종말론적 역사신학을 추구한다. 이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과도 다른 양극을 붙잡는 역동적인 통일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신학사상은 어거스틴(Augustine) 전공자로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 사상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삶의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계시와 성령의 조명이 절대 필요하지만, 그것과 함께 절대로 필요한 것이 역사적인 안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안목은 현재와 과거와 영원과의 만남으로 주어지며 종말론적 초연의 자세를 지니므로 주어진다고 말한다.

 

역사적인 안목과 양면성의 사고를 지닐 때,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지역주의나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이며,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나 또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고 본다. 남양은 이런 세계관을 지닐 때 우리는 고난과 죽음과 종말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와 자세를 지닐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고난은 일반적으로 범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형벌이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훈련의 한 도구임을 알게 된다. 고난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바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이웃을 바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남양은 실천적 신학자요, 원수도 사랑으로 품는 사랑의 목회자"

남양은 먼저 개혁주의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1) 하나님 중심 사상 (2) 성경 중심적 사상 (3) 교회 중심적 사상 (4) 기도와 경건 중심 사상 (5) 문화변혁 중심 사상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신학이나 역사관 또한 그 뿌리가 개혁주의 신학사상과 칼빈주의 교회관에 입각한 학자라 보여진다. 남양은 복음주의 신학의 약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즉 개인주의적 영향이나 감정주의와 주관주의적 성향, 교회관의 약점이나 교리의 약화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양은 개혁주의 신학 전통과 더불어 복음주의 신학 전통을 함께 붙잡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남양 김명혁의 삶과 신학은 학자로서 상아탑 안에서 사색적인 이론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성도의 교제와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의 실천적인 신학의 삶은 목회와 신학에 이어 선교와 역사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른바 선교와 통일을 향한 실천적인 활동이다.

 

남양은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며 그 분야의 많은 글과 저서를 남기기도 하고, 현장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쏟기도 한다. 은퇴 후에도 미자립농어촌교회를 방문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멘토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착한 스승이 되고 교계의 지도자가 되어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기획출판한 <복음주의와 한국교회>(2004) 논문집에서 정진경 목사는 남양을 가리켜 "내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고, 또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허용할 수 있는 친구 가운데 한 분"(p.42)이라고 하였다.

 

남양은 순교자의 아들로서 북한 공산당의 핍박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 동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실천적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은 진정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연상케 한다. 백석대학교 주도홍 박사는 남양을 가리켜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사랑과 온유, 겸손과 지혜, 거기다 리더십을 갖춘 목회자요 학자요 기독시만운동가로 사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북한 공산당을 한때 원수로 여겼으나 그는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자로 북한을 안타깝게 여기며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순전한 사랑으로 물심양면으로 사랑하신다. 그의 모습에서 종종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습을 본다"라고 했다.(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2020, p.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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