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대형교회가 너무 예배를 쉽게 포기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비난을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민보건과 사회공익에 앞장서야 하며 공적인 교회로서의 책임도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전염병 확산의 거점이 되어 버린다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예배를 위한 신적 소명 앞에서는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국민보건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예배를 취소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천주교에서는 믿음으로 이기자고 하면서 성도들을 성당으로 강제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다가 2천 만 명 이상의 유럽 사람이 죽고 말았지요. 그때 루터는 교회의 원래 근본은 가정교회였으니 우선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루터가 지혜롭게 판단을 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대형교회가 예배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근본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중직자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저는 예배를 더 소중히 여기고 교회를 사모하는 역설적인 신앙을 외쳤습니다. 왜냐면 사회 심리학적으로 볼 때 3-4주만 예배를 안 드려도 탈예배화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고 이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보건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만들자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싼 땅에 무슨 공원을 만드냐며 차라리 높은 건물을 지어 수익을 내자고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국의 모든 교회가 예배를 중지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산성화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예배를 드리면 벌금을 낸다고 행정명령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 셋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국민보건에 앞장서는 측면에서는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처럼은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예배 자체가 취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주도 교역자와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되,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는 유튜브로 온라인예배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예배와 관련한 순혈적 신앙의 정체성도 지키고, 동시에 국민보건과 공적교회로서의 책임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가까운 날 코로나19로부터 우리 모두가 자유하게 될 때, 부디 온라인예배 습관에 길들여지지 말고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배를 더 간절히 사모하고 더 많이 모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