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7. 불후(不朽)의 개혁자 엘리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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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죄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집단은 끊임없이 죄악으로 기울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배도와 타락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요청은 “회개하라” “개혁하라” “돌아오라”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주된 ‘사명’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나라에 등장했던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개혁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엘리야를 생각하게 된다.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으로 시작된 북왕국 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 아합의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배도와 우상숭배는 가히 극도에 달하였다.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후로 맞아들인 아합은 그 아내의 영향력에 거의 노예가 되다시피 하여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온 나라를 우상숭배의 소굴로 만들어 하나님의 진로를 격동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요단강 동편 길르앗의 깊은 산 속에 한 경건한 기도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엘리야였다. 그는 어떤 특별한 직책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으며, 평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말씀에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그의 마음에, 아합 왕의 타락과 국가의 배도에 대하여 불타오르는 의분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엘리야의 믿음과 용기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하여 하나님의 단호하고 신속한 조치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엘리야는 주저함 없이 담대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왕궁으로 직접 들어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였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갑작스러운 엘리야의 출현과 그가 경고한 재앙에 대하여 황당해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합 왕을 뒤로 하고 엘리야는 급히 왕궁을 빠져 나왔다.
산천초목이 우거지고 늘 풍부한 물이 흐르고 있던 이스라엘 땅에 갑자기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는, 큰 비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홍수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노아의 메시지 만큼이나 생소하고 믿을 수 없는 예언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고, 그 믿음에 기초하여 곧바로 왕에게로 달려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개혁자의 매우 중요한 특성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성취를 미리 바라보고 확신을 갖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에 적용된다.
태양이 주신(主神)인 바알 숭배는 이방 여자 이세벨에 의해서 이스라엘 땅에 만연된 신앙이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초목과 각종 곡식과 식물(植物)들이 자라나는 것은 태양신이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는 재앙을 통해서 저들이 믿는 신(神)이 아무 것도 아닌 헛된 신임을 깨닫고 천지만물을 지배하시는 참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더욱 강팍해진 아합과 이세벨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이스라엘 땅에는 극심한 가뭄현상이 일어났다. 비옥했던 이스라엘의 토지는 풀포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땅이 되었고 ,짐승과 가축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이 왕궁에까지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고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졌다.
니느웨 사람들과 그 나라의 왕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였으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은 회개하지 않았다. 태양 광선이 진흙에 닿으면 흙이 딱딱하게 굳어지지만 구두약이나 왁스 같은 물질에 닿으면 그것이 액체로 녹아지듯이, 인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바알 신을 철저하게 믿고 있던 아합과 이세벨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일이 아니라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야만 죽이면 비가 올 것이라고 판단하여 엘리야를 찾아서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까지 연락하여 엘리야를 찾아 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엘리야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알의 제사장들이 비를 오게 하려고 바알 신에게 수많은 제사를 드리고 빌고 간청하여 현 사태를 반전시켜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오히려 그들이 섬기는 태양은 더욱 강렬하였고 온 대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태양을 저들의 신으로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고집과 편견과 우매함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의 존재만 믿을 뿐, 그분의 말씀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 14:1)고 한다.

악은 악을 낳고 선은 선을 낳는다
엘리야를 찾아서 죽이려는 노력이 아무런 성과 없이 수포로 돌아가자, 화가 치밀어 오른 이세벨은 이스라엘 나라 안에 있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색출하여 죽이려고 결심을 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바알의 제사장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 충실한 선지자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선지자 부류에 들어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어쨌든 암암리에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는 선지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세벨은 이러한 선지자들을 찾아내어 죽이면서 그 분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른 악을 생산하여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마침내 멸망을 초래한다. 이것이 악의 속성이고 결말이다.
그런데, 이 사건 속에서 한 특출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합 집에 궁내 대신(大臣)이면서 하나님께 충실한 인물 오바댜라는 사람이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추진할 때에,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던 오바댜는 “선지자 일백 인”을 선별하여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왕상 18:4)여 살려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과 용기의 사람이다. 발각되면 즉시로 자신이 죽을 일인데, 그런 일을 감행한 것을 보면 오바댜라는 인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유용한 청지기였던 것 같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변화되려면 마음의 샘이 바뀌어야 한다.
개혁자들 중에는 그 성향에 따라서 두 부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선두에서 일하는 엘리야 같은 개혁자가 있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치 소금처럼 백성들 속에 섞여서 주변을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오바댜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이 많이 있어야 진정한 개혁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큰 목소리를 내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신령한 감화력을 통해서 개혁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면 진정한 개혁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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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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