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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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을 잘 묵상해 보면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 더 명확해 집니다.

먼저,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6:5) 위선자는 겉으로 보여 지는 행동만 선한 체 하는 사람입니다. 위선자는 행동이 자신의 인격이 되지 못하고 분리되는 게 가능한 사람입니다. 위선자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기도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들은 기도의 댓가로 자기들이 원하는 인정을 보상으로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 없습니다.(6:5)

 

예수님은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는 사람이 그곳에 갑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그곳에 오십니다.(6:6) 그리고 은밀한 중에 기도를 들으시고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십니다.(17:26)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실체가 분명합니다.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이방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 주십시오반복하면서 영혼 없이 중얼거립니다. 그 기도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받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구하기 전에 이미 알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받는 것입니다. 인격이 없는 관계는 댓가를 치르고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점원이 친밀하고 사랑하는 깊은 관계 때문에 나에게 물건을 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물건 값을 지불했으니 주는 것입니다.

 

인격 없이 구하는 내용에서 친밀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신에게 자기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겠지요, 그 기도는 내가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 주십시오를 반복하면서 의미 없는 말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계없이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것만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가장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어찌 영혼 없는 주십시오를 반복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댓가를 주고 받는 사이가 아니라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이지요, 크게 말하든 작게 말하든 많이 말하든 한마디만 하든...말하는 내용이 두서가 없어도 들으십니다. 그분에게 말하기만 하면 작은 신음소리까지 들으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구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 이시기 때문입니다.(6:8) 아버지와는 대가로 주고 받는 거래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마땅히 구하는 것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안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를 신뢰하기 때문에 안주시면 기다리고 아버지의 뜻이 절대 아니면 포기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얄팍한 기도와 비교 해 보십시오, 수준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런 수준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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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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