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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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선생이었지만 그가 아는 지식의 한계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고 그 분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대화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거듭남이 무엇인가? 거듭남은 예수님과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 없는 의미입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지만 거듭남이라는 것은 배워 본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노인이 되는 것이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3:4)”

 

니고데모는 물리적인 생명 외에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육체의 순리대로 지성인답게 냉철하게 반문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누구든지 물과 영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유대민족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아니었던가요..

 

니고데모는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물과 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물리적인 생명이외에 다른 생명이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다른 생명은 물과 영으로 나는 생명, 즉 죄가 씻겨 성령으로 태어나는 생명 입니다.(2:38) 이 생명은 살면서 하나님께 직접 받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생명은 더러운 것과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받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받으면 물리적 생명을 가진 사람에게 존재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생명이 내안에 들어와 잉태되어 자라는데 어떻게 아무 변화가 없을까요? 생명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존재가 변화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3:6)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은 다른 생명입니다. 동일한 종이지만 존재는 다릅니다. 어떤 생명이 있느냐에 따라서 육체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으로 구별합니다. 그들은 존재가 다르기 때문에 사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사람은 물리적인 생명만 있습니다. 그는 영의 생명이 없으니 육체의 생명의 한도 안에서 살다가 죽는 거기까지만 됩니다. 영이 죽어있어 영의 생명이 없으니 보이는 육체가 즐거워하는 것으로만 만족해합니다. 육체의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다릅니다. 물리적인 생명에 또 하나 성령의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는 영원까지 이어집니다. 그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듣고 거듭남의 의미에 대해서 놀랍니다.(3:7)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부터 원인이 되어 발생한 유일한 분이십니다. (3:13)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면 그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3:15) 그 외에는 천국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물리적인 생명만 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안 됩니다. 물과 영으로 거듭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3:5)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는 이 증언을 받은 자들입니다.(3:11) 그 생명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십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가는 니고데모를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에 대한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충격이었겠지요, 자기가 알고 있는 메시야의 자료들을 뒤져보고 연구해 보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지 않았을까요? 고민하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고 영의 생명으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19:39) 유대인의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있었습니다.(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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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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