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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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을 지나 광야로 들어갑니다. 크고 두려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왜 애굽에서 구원하셨을까요?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1:8)

 

구원은 어쩌다 보니 우연히 받은 게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구원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라그런데 가나안이 어디입니까? 가나안은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왕은 하나님입니다. 나라는 왕의 통치를 받으면서 세워집니다. 왕은 자기의 백성을 자기의 나라로 보내시기 위해서 구원 하셨습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못가겠다라면서 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을 목적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그 땅에 못 올라가겠다니...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럼 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내가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지 목적을 모르니 가나안에 못 들어가겠다는 말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생각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그 속에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인데, 정탐꾼 사건 에 부딪치면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정탐꾼을 보내자고 제안했었습니다. 일을 실행하기 전에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워 더 효율적으로 하면 좋겠지요.

각 지파별로 대표 12명을 뽑아서 정탐하러 보냅니다. 정탐꾼들은 눈으로 본대로, 아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1:28)

 

세상은 너무 크고 강대한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기고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려고 목적을 가지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의 말을 선택할 것인가? 정탐꾼의 말인가, 모세의 말인가? 세상의 말인가? 진리인가? 결국 그들은 정탐꾼의 말을 선택했습니다. 그 안에 진리가 없으니 모세의 말은 안 들리고 정탐꾼들의 말이 꽂혀서 공감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틀린 것 같고 세상이 하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진리를 외치고 부르짖다가 마지막 내린 모세의 결론은 이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1:32) 가나안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의 통치를 받고 그분과 함께 사는 곳,

그런데 거기로 건너가는 것이 그렇게도 힘이 듭니다. 여기서 가나안으로 못 들어가는 자들이 영원한 그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단순한 원칙이 있습니다. 왕의 통치를 받아서 왕과 함께 가면 잘되고 그 반대 길로 내 맘 대로 가면 망합니다. 오늘 선택한 불순종과 불신앙의 삶은 처절한 결과로 받습니다.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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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하나님 나라’(신1;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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