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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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61:3).

 

얼마 전에 한 자매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자매의 말이 어떤 일로 마음이 몹시 아파 수양관에 다녀왔는데 그곳에 이름 모를 열매가 꽃처럼 피어있어 화면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자매의 친구에게 카톡이 와 열어보았는데 자기가 찍은 사진과 같은 종류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 식물 이름은 남천이었습니다. 식물의 뜻을 확인해보니 전화위복이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자매는 지금의 어려움이 복이 되었고, 또 복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화위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전화위복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자신이 승리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영원한 패배였으며,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님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그 일로 인하여 요셉은 애굽에 팔려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총리가 되어 기근 때 그 아버지와 권속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르 왕이 총애했던 아말렉인 하만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르드개에 대한 분풀이로 모르드개와 파사(페르시아)에 사는 유다인은 전멸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하만과 아말렉인을 전멸시키도록 하셨습니다.

 

또 바울과 실라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의 귀신을 쫓아내고도, 좋은 일 하고도 옥에 갇혔지만 그 일로 인하여 간수와 그 가족들이 구원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6:16).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1)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재앙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설사 재앙같이, 화같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포장지일 뿐 안에는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그 축복을 찾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2018년 초겨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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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재앙이라는 포장지에 담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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